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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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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Mar 23. 2022

나는야, 오늘은 자유부인

수술 16일 차

2022년 3월 23일 수요일 날씨 흐림  


딸 마리의 어린이집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확진자가 나온다. 어제는 마리를 일찍 하원 시켰다. 지난주 마리와 접촉했던 교사가 확진됐다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영의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렸다. 우리는 또 만나지 못한다.  


오늘 영은 수술 후 첫 담당 외과의사 진료를 본다. 외과의사 외래 진료는 처음이라 나보다 똑똑한(?) 오빠 운이 가기로 했다.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보니 한번 만나면 넘칠 정도로 질문을 퍼부어야 하는데 나는 늘 벙어리처럼 있다가 이후에 '아, 그거 물어볼걸!' 하며 무릎을 치기 때문이다.


영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제, 영의 점심이 걱정돼 배달 어플을 이용해 그녀의 집으로 반찬 몇 가지를 배달시켰다. 청국장과 도라지 초무침, 참나물무침, 아삭이고추된장무침.


암환자들은 저염식으로 몸에 좋은 것만 먹는다는데 늘 배달음식, 포장음식, 엄마가 직접 차린 음식으로만 먹여서 미안하다. 하지만 없는 솜씨가 미안함을 동력 삼아 갑자기 금손이 될 순 없지 않은가. (담도암 환자에게 해조류가 좋다 해 얼마 전 미역국을 끓여다 줬지만 영은 손도 대지 않았다. 소고기 기름을 제거하지 않아서 기름이 둥둥 떠다녔는데 나도 먹기가 좀 뭐한.. 비주얼이었다.)

어제 반찬 배달을 시키고 영에게는 '바리가 보낸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영은 유독 바리가 사준 것이라면 더 맛있게 먹는 경향이 있다.(비릿해서 싫어하는 어죽도 우리 사위가 사준 것이니까 먹어야지, 라며 2인분을 며칠에 걸쳐서 먹었다.)  


오늘은 마리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영은 오빠 운에게 맡기고, 나는 자유시간을 누린다. 맛있는 커피를 사 먹고 싶어서 차를 끌고 카페에 왔다. 날씨가 조금만 더 맑으면 좋을 텐데.(나 홀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조금의 죄책감이 들지만, 이 와중에 커피는 맛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식재료 몇 가지를 사서 요리 연습을 해볼 요량이다. 맛있으면 영에게도 갖다 줘 보고, 안되면 미안하지만 내 남편 바리에게... 착한 바리는 내가 만든 지옥에서 온 김치찜조차 맛있게 먹어준다.  


내가 만든 김치찜. 맛이 없다.

영의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기 전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졌을 때, 우리는 이삿짐센터에 짐을 맡겨두곤 찾지 못했다. 이삿짐센터에 지불할 돈이 없어서였다. 우리 가족은 모든 추억을 분실했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현재에만 살게 된 것이.

그 사이 우리 가족은 내 남편 바리와, 딸 마리까지 두 명이나 가족이 늘어났다. 썰렁했던 3인 가족에서 이제는 5인 가족이 됐으니 내 엄마 영의 옆과 뒤가 좀 더 든든해지지 않았을까.

암 수술 후 영은 몸무게가 4kg 빠졌다. 방사선, 항암 전에는 좀 더 체력을 올리고 몸무게도 늘려야 하는데 입맛이 없고 수술 부위가 아직은 아프다 보니 쉽지 않다. 수술 전 내 딸 마리를 핑계 삼아 영의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밀려서 하지 못했다. 방사선을 시작하면 살이 더 빠질 테니 그 전에라도 사진을 꼭 찍고 싶다. 내 엄마 영의 머리카락이 몇 올이라도 더 남아있을 때 그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다. 내 사랑하는 엄마.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게 되는 짧은 만화(?)가 있다. 대략 짐작컨데, 작가의 어머니는 치매 초기인 것 같다. 작가와 이모를 착각해서 이야기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작가는 슬프지 않다고 했다.  

- 별로 슬프지는 않다. 엄마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병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슬퍼지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엄마를 매 순한 마주하게 되는 나의 기적. 엄마는 자유롭게 잊어버려. 내가 추억하고 싶은 만큼 기록할게.-

나는 아직 철부지 인 것일까. 왜 나는 아직도 눈물이 계속 나는 걸까.  



내일은 영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결혼 후 집을 떠난 뒤, 집 근처에서 내 차 문이 잠기는 소리와 비슷한 '삐삑' 소리만 나면 홀로 울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울보 우리 엄마. 내일은 내가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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