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고마웠다, 그 생의 어떤 시간’을 읽고
그때의 인생은
미움과 불신과 고통으로 흔적을 남긴 때가 있었다.
또 어떤 때의 인생은
사랑과 믿음과 행복으로 흔적을 남긴 때도 있었다.
살다 보니
문득, 그 모든 흔적들을 숨기지 말고
더 애태워 더 활활 타버리게 그냥 내버려 둘 걸 하는 후회도 있다.
모든 감정을 다 태워버려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해둘걸 하는.
미워하는 감정이든
사랑하는 감정이든
더 격렬히 일어날 걸
더 열렬히 마음을 다 할걸.
나도 그때,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을 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을 숨겨야 했던가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그 많은 시간에 감정을 숨기며 살았던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게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야겠다
그 어떤 생에 중요한 순간은 늘 찾아오거늘
고마웠다, 그 생의 어떤 시간
허수경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