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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Sep 15. 2024

자식이 늘 나보다 먼저 가 있었다.

요즘은 앞으로 아이를 매는 슬링이 유행이지만 우리네 어머니들은 늘 보자기에 아이를 싸서 등에 업고 다녔던 것처럼, 자식이라는 존재는 부모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먼저 살아보았으니 한 걸음 먼저 나아가 이끌어주고 항상 길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딸이 항상 내 앞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나보다 먼저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와 풍경들을 보고 들으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게 해 주며 뒤돌아보지 않는 삶을 선물해 주었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던 갓생을 살던 사람이든 시니컬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든 자식이 태어난 순간, 오늘만 산다는 마인드는 없어지고 앞을 보고 살 수밖에 없어진다는 것을.

매일 새로운 도전과제를 받는 새로 태어나는 날이며 혹자는 살아갈 원동력이라고도 표현하는 이른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희망'이라는 것이 생긴다. 설령, 아무리 깜깜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기에 환경과 지구와 우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어떻게든 불빛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딸이 이끌어주는 데로 가다 보니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여 감동적인 순간이 늘어났고, 감동이 늘어나니 당연히 놓치고 있던 작은 행복이 늘어났다. 잠들기 전 남편과 아이에게 오늘 하루 행복했다,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말하는 몇 번의 날들과 나름의 고민과 사투, 걱정이 많은 수십 번의 날들이 촘촘히 짜여진 대단치 않은 인생일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없었던 희망이 생기고 앞으로의 매 순간이 기대되니 나이 드는 것도 좋아지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가끔 별것 아닌 돌부리에 넘어져 절망할 때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세상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딸은 내가 낳았는데, 정작 분만실에서 새로 태어난 건 나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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