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 손실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5년 전 지인이 임원으로 있던 회사에 투자했었다. 바이오 열풍이 불고, 제2의 셀트리온이라며 대단한 기세로 투자금을 모으던 회사였다. 인생 베프가 장담하는 회사의 미래 청사진과 인류애가 넘치는 기업 철학에 매료된 나는,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거다. 됐다.
(아...5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에게 귀싸대기를 날릴 텐데.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가지고 있던 현금과 상여금으로 받았던 회사 주식을 모두 털어 비상장주식과 전환사채를 사 들인 뒤, 나는 희망 회로를 최고속으로 돌리며 한 방 크게 먹을 날을 고대 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대담한 사람이었나. 역시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물러섬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 지금 껏 바로 이 날을 위해 호연지기를 길러온 것이 아니더냐. 몰빵이로소이다.
전환사채 예수기간이 1년이었는데, 이미 회사 주가는 7배가 넘게 올라가고 있었다. 가겠지? 더 갈 거야 아마. 가즈아. 가는 거야. 비나이다. 비나이다. 분석 따윈 필요 없다. 오직 신과 함께 할 뿐이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기도했다.
신이시여. 난 많이 안 바래요. 딱 50억만 가지고 은퇴할게요. 서울 아파트 상위 10%가 20억이라면서요. 24평 아파트 두 채 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괜찮아요. 은퇴해서 일단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하고, 남은 인생 검소하게 놀면서 살아 볼게요. 착하게 살 거예요. 아멘.
50억을 이미 가진 것처럼 마음이 넓어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술도 팍팍 쐈다. 그냥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서라고 말했다. 물론, 내가 영 앤 리치가 되는 것은 비밀이다.
잃을 것을 예상하고 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이렇게 망상에 빠져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그 느낌 알죠? 뒤통수가 싸한 느낌. 이런 안 좋은 느낌은 웬만해서는 나를 비껴가는 일이 없지. 딱 1년이 지난 뒤였다.
(잠깐, 소주 원샷 좀 하고 올게)
꽤 큰 연봉을 받고 들어간 친구가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내부에 분열이 있다고 했다. 곧 해결될 거 같다고 한 것이 2년이 흘렀고, 친구는 2년 가까이를 무임금으로 일했다. 그렇게 임직원 60%가 회사를 떠났다. 뭐 이제와서는 남아 있는 40%가 더 놀랍다.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라임 사태에 연관된 종목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2년 동안 거래정지에, 그 와중에 배임 횡령에, 지들끼리 싸우며 온갖 루머를 퍼뜨리다 결국 자멸했다. 빈껍데기 회사인 것이 사업보고서에 모두 나와 있었는데도 나는 장님이었네.
거대한 시체가 생기니 여기저기서 시체 사냥꾼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남은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 사기꾼들이 총출동했고, 두 집단 간 맞고소가 판을 쳤다. 드러운 놈들끼리 쇼를 하네. 그리고 드디어 상장폐지 결정.
이제 끝이군.
한 편으로는 마음이 후련했다. 이미 2년 전 이 투자를 손실 처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투자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모두 했다. 투자 실패의 정석.
그리하여 내가 대감집 노비 생활을 하며 만든 수년간의 결실을 공중분해시켜 버렸다. 아... 그 숱한 야근의 밤들로 만들어낸 투자금은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 쌍놈의 새끼들.
한심해서 견딜 수 없지만 쓰레기 통에 넣진 못하겠고 데리고 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게도 쌍욕 발사.
얘, 꼴좋다. 한 껏 들떠서는 발광을 떨더니. 이 똥 멍청이 나 자신아, 이번 사태에서 배운 것이 없다면 너는 앞으로 그냥 26주 적금이나 하면서 살아라.
50억 원의 꿈이 50원으로 사라지네.
정리매매 기간이다. 반성문을 써 보기로 한다.
Credit: Mark Airs/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