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언니! 잠깐 나와봐!"
"아 왜..."
"아 빨리빨리!"
퇴근 후 호들갑을 떨며 현관문 앞에서 나를 찾는 여동생의 목소리이다. 뭔데 저렇게 호들갑일까 별거 아니기만 해봐라, 속는 셈 치며 침대에서 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언니 달 봐봐!"
동생이 손가락을 쭉 뻗으며 가리킨 곳은 하늘. 그냥 하늘도 아닌, 파스텔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바탕에 있어 더 돋보이는 손톱 달이 아주 가깝게 밤하늘 위에 날카롭게 걸려있었다. 너무 선명하고 근사해서 이게 진짜 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어머... 어머어머!! 와아...!"
"그치? 대박이지?"
하루 종일 몽롱했던 시선이 확 떠지는 기분이었다. 세상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본다며 소리를 지르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핸드폰 카메라를 집어 들고 이 각도, 저 각도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찍으려 애를 썼다. 저녁 준비 중이시던 엄마도 뭔가 싶으셨는지 빼꼼 하늘을 들여다보신다.
"엄마 달 좀 봐봐. 진짜 예뻐"
"예쁘네"
"어쩜 저렇게 예쁘지? 뚜렷해 완전"
평소에 하늘이 좋아 자주 사진을 찍어대던 나였지만, 오늘은 하늘보다는 달빛에 눈길이 자꾸 머물렀다.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져 버려서 난간에 팔을 올리고 멍하니 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핸드폰 카메라로만 남겨두기엔 또 뭔가 아쉬웠다. 결국 이번에 새로 데려온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좋은 렌즈는 아니지만, 핸드폰 카메라보다는 조금 더 이 아름다움을 가득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필름을 감고 셔터를 눌렀다. 괜히 길 가다가 돈을 주운 것 마냥 뜻밖의 달빛 유혹에 기분이 붕붕 떠다니더니, 문득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시가 떠올랐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어렸을 때 이 시를 읽었을 땐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오늘로써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외치고 싶었다. 마음에서 꿈틀꿈틀. 전화가 하고 싶었다. 딱딱한 문자 말고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전화가 하고 싶었다. 잘 지내냐는 형식적인 안부 인사가 아니라, 오늘 달이 너무 예뻐 전화를 했다고 그쪽에서도 보이냐는 둥 낭만을 떠들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아 주변 몇몇 지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진과 함께. 오늘 하늘이 이렇게 예뻤다고, 오늘 달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다고 내 것도 아니면서 내 것처럼 그렇게 달을 나눠 주었다. 다들 정말 예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전화를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그 생생한 달빛을 오래 남겨두고 싶었는데 카메라의 한계가 아쉬웠다. 필름 카메라는 현상을 해봐야 알 테지만 오늘의 벅찬 느낌까지 생생하게 인화할 순 없을 테지 싶었다.
저녁 식사 후, 다시 한번 밖을 나와 아쉬움을 달래 보았다. 마음으로 그렇게 내내 아름답게 빛나 달라고 소원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도 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두 눈에 가득 담아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멍하니 턱을 괴고 마음껏 달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내가 이리 뚫어져라 보는데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달빛에게 얼마나 고맙던지, 잠시 카메라는 내려두고 두 눈에 가득 달빛을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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