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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치 Apr 04. 2016

왼손 제비

익숙한 오른손에서 어색한 왼손으로


단순히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잡아봤을 뿐인데 모든 게 어색하고 흔하게 갈겨쓰던 모음 한 글자마저 어린아이가 그려 놓은 글씨 마냥 흐물흐물 거렸고, 자연스레 전보다 더 신경 써서 꾹꾹 눌러 적기 시작했다.




난 오른손잡이다.
모든 게 오른손 위주로 돌아가는 흔하디 흔한 오른손잡이. 양치질을 할 때에도, 밥숟갈도, 젓가락질도, 스트레칭을 할 때에도, 고개를 갸우뚱할 때에도, 문을 열고 닫을 때에도, 옷을 입을 때에도 오른손, 오른쪽이 반사적으로 먼저 나가 버리는 그런 오른손잡이. 그런 내가 왼손으로 펜을 잡아 보았다.


왜냐고? 그냥!


왼손잡이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뜬금없는 궁금함이랄까? 생각보다 굉장히 불편하고 낯설었다. 바로 오른손 옆에 있던 나의 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사소한 변화에, 사소한 낯섦에 얼굴 내밀어 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매일같이 오후 6시 정각에 회사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퇴근했다면 가끔은 버스를 타보기도 하고, 한 정거 정도 먼저 내려 걸어가 본다던지, 항상 오는 연락에 대답만 했다면 선뜻 먼저 연락을 해본다 던지, 채색을 크레파스로만 해보았다면 오늘은 물감과 붓으로 멋을 내본다던지,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밥으로 끼니를 해결해 보았다면 주말에는 밥이 아닌 다른 재료들로 새로운 식감을 느껴본다던지, R&B 힙합 노래만 흥얼 거렸다면 클래식이나 재즈를 접해본다던지, 휴대폰을 손에 달고 살았다면 하루쯤은 이불로 내동댕이 쳐주는 이런 사소한 것들로 말이다. 익숙함을 벗어나 작은 새로움을 느껴보는 것.



그 순간 생각보다 많은 익숙함들이 새롭게, 낯설게,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퇴근길 사람들로 꽉 붐벼있는 흔히들 말하는 '지옥철' 조차 버스와는 다르게 제 시간에 딱딱 맞춰 오고 감에 감사할지 모를 노릇이고, 항상 먼저 왔던 연락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일이고 어려운 일이고 관심의 싹이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고, 크레파스의 거친 느낌과 내 손에 묻어나는 그 냄새가 아련해질지도 모를 노릇이고, 역시 따끈따끈한 흰쌀 밥이 최고지! 라고 외칠지도 모를 노릇이고, 그루브는 힙합이라며 익숙한 리듬이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를 노릇이고, 항상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이라 몰랐던 소통의 고리인 휴대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를 노릇 아닌가?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펜 하나 넘겨주듯이 사소한 것들에서 말이다.




잊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낯섦을 핑계로 일상 속에서 내가 당연히 생각하며 스쳐 지나간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 사소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오늘 하루쯤은 왼손 혹은 오른손으로 꾸-욱 눌러 적어보길 바란다. 행복이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거창하고 근사한게 아닐테니 말이다.






*BGM 박새별-노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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