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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May 01. 2021

원하는 건 왜 원할 때 가질 수 없는 지


 영화 <미나리> 를 보면서 과몰입 했다. 영화 속의 인물들, 배경, 상황이 내 어렸을 적 모습들과 정말 비슷했다. 그래서 <미나리>를 보는 내내. 머리 한 구석에서는. 내 어린 시절이 영화처럼 흘러나왔고, 나는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이렇게 영화와 나 사이의 거리를 두지 못한 채, <미나리>에 깊게 몰입했다. 하지만 너무 몰입했는지, 극장을 나와서도 오랫동안, 지나간 내 유년기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떠오르는 기억들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두 기억 모두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솔직했다. 윤여정 배우가 위트 있는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솔직하다면. 우리 할머니는 본인 생각과 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 것'으로 솔직했다. 영화에서 윤여정 배우가 손자에게 "예쁘다, 예쁘다, 프리티, 프리티" 라고 계속해서 말할 때.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살면서 할머니에게 "예쁘다" 라는 말을, 돌아가시기 전에 딱 한 번 들어봤다. 

 



 <미나리>는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작품성과 윤여정 배우의 대한 조명, 현지 반응 등 아카데미 수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분석들이 많다. 과거의 대한 향수, 아메리칸 드림, 최근 아시아인의 대한 혐오문제, 미국 내 높아진 아시아인들의 위상 변화, 인종적 다양성 추구하려는 아카데미의 모습 등등. 이런 내용들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윤여정 배우가 연기한 '외할머니' 란 캐릭터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왜 외할머니일까.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 내용 중, 손주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외할머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외할머니 입장에서 본인이 딸을 낳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딸이 자식을 낳았다면, 그게 누구의 자식이건 간에 자신의 손주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친할머니 입장에선 며느리가 낳은 자식이,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식일 수도 있다. 이에 친할머니 보다 외할머니가 더 손주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물학적인 내용 말고 다른 이유를 개인적으로 추측해보자면. 본인도 겪었던, 딸의 출산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당신과 같은 성별인 딸이 엄마가 됐다는 동질감으로, 손주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젊었을 적 먹고 사느라 바빠서 딸에게 다 주지 못한 사랑을, 손주에게 준 것일 수도 있으리라.




 태어나면서부터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래서 남들에게 할머니를 소개할 때 빼고, 나는 외할머니를 외할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손주들 잘 되라고 형과 내가 씻은 목욕물을 항상 꽃밭 줬다고, 엄마가 말해줬다. 선한 분이었다. 웃음이 많았고 모든 사람들, 동물들을 다정하게 대했다. 내가 기억이란 걸 할 때부터, 할머니는 허리가 굽었었다. 평생했던 고된 농사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져 걷기 힘들어지기 전까지 그녀는 없는 일도 만들어하는, 정말 부지런한 분이었다. 내게 할머니는 천사 같았다.


 매우 솔직한 천사. 할머니는 정말 착하디 착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솔직했다. 거짓말을 못했다. 빈말도 잘못해서, 빈말을 할 바엔 말을 안 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 근데 이런 할머니의 솔직함은 당신의 본의와 달리, 가끔 내 마음의 생채기를 냈다. 물론 할머니가 손주로서 나를 사랑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할머니는 형을 더 좋아했다. 할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 과거 외할아버지 집안은 매우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 데다가 당시 강했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할머니도 아들을 낳아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를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자식은 네 자매가 됐다. 시간이 흘러, 이모들은 커서 도시로 떠나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살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뒤따라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떠났다. 그렇게 같이 살던 와중에 엄마가 아들(형)을 낳은 것이다. 처음 만날 때 이미 유치원생, 초등학생이던 손주들만 보다가, 정말 애기인 형을 봤을 때 할머니가 얼마나 예뻐했을지. 게다가 형은 어릴 때 정말 잘생겼었다. 지금 생각해보 할머니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나도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와 살았으니, 할머니가 형을 더 좋아했던 예를 들자면 많지만, 가장 컸던 건 말이었다. "예쁘다" 라는 말. 형에게는 예쁘다 라는 말이 넘쳤다. 엄마도 아니고 할머니가 예쁘다는 말 좀 안 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서운해 하냐? 라고 한다할 말은 없지만. 어린 시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나를 키워준 할머니는 내게 엄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릴 때 나는 누군가의 관심이 귀했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나한테도 예쁘다는 말을 해달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할머니에게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뇌졸중이 왔다. 심장에도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았다. 곧이어 치매가 왔다. 오랫동안 부지런히 밭일을 해서 체격이 좋고, 항상 까만 피부였던 할머니는 병원 생활 몇 달만에 깡마르고 피부가 새하얘졌다.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져서, 사위인 아빠 잘 못 알아봤고, 엄마는 가끔 못 알아봤다. 이모, 이모부, 사촌들은 거의 못 알아봤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와 형은 알아봤다. "할머니 나 누군지 알겠어?" 라고 물을 때면, 할머닌 형과  이름까지 정확하게 말했다.


 몇 해전, 할머니 생일이 평일이었다. 나는 일하느라 못 가고, 생일 당일에 엄마, 아빠, 형, 사촌들은 할머니를 뵙고 왔다. 형은 할머니가 이제 자기도 잘 못 알아본다고 걱정스레 말했다. 주말에 나는 혼자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를 혼자 보러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바로 알아봤다. 정말 오랜만에 할머니와 단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할머니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며 내게 "예쁘다" 라고 말했다. 태어나서 할머니에게 처음 듣는 예쁘다는 말이었다. 신기했다. 대화 내내 말을 너무 잘하셔서, 정신이 흐려지신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대화 중간중간 한 농담들 중, 당신 마음에 안 드는 농담에는, 매우 단호한 반응을 했던 걸로 봐서도, 그녀가 거짓말을 한 거 같진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을 보러와준 게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지, 본인의 미적감각을 바꿀 사람 아니었다. 나이가 들 얼굴이 좀 괜찮아졌나? 싶어서. "나 진짜 예뻐?"하고 묻자 할머니는 말했다. "예쁘다."  

    



 요양원에 다녀온 지 몇 달 후, 할머니는 심장 문제로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고 돌아가시게 됐다. 처음으로 혼자 만나러 가서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날. 할머니와 단 둘이 대화할 때 나는 잠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제야 나를 제대로 바라봐준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많이 기쁘진 않았다. 물론 듣고 싶었던 말을 들어 좋았지만, 한편으론 슬펐다.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었다. "예쁘다" 라는 말보다 조용한 병실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단 둘이 나눈 대화가 더 좋았다. 


 요양원 건물을 나와 언덕을 내려오며. 할머니, 할머니와 나, 그리고 왜 원하는 건 원하는 때에 가질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할머니도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 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내가 너무 나이 들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젠 정말 누구의 관심도 귀하지 않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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