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원 Mar 18. 2021

성실해 보이세요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다. '책읽아웃' 팟캐스트는 인트로 CM송 소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맨날 '책읽아웃~ 책읽아웃~ 책읽아웃~' 하는 노래가 나오면 얼른 10초 앞으로 넘긴다. 게스트로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가 나왔다. 왜 좋냐면 적당히 담백하다. 기자 출신 작가라 그런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문학적인 느끼함이 없어서 좋다.


 작가의 신작에 대해 얘기하다 뜬금없이 스피드 퀴즈가 시작됐다. 초시계 소리와 함께 사회자가 빠르게 작가에게 물었다. '재능과 성실 중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작가가 말했다. '성실.'


 뜬금없는 스피드 퀴즈가 모두 끝난 후, 사회자가 물었다. '왜 재능 대신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말하셨나요?' 작가는 엷게 미소 띤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성실하면 날카로움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위로 받은 것 같았다. 뜬금없는 스피드 퀴즈에서 위로 받을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그때 나는 정말로 위로 받았다.




 "성실해 보이세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면, 나는 성실하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빡치는 말. 외모적으로 별로고 할 말 없으면 그냥 대충 웃고 넘기거나, "인상이 좋아 보이시네요 ㅎㅎ"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잖아. 근데 무슨 뭐 성실해 보이세요? 성실해 보이세요??


 이게 왜 내 발작버튼이었냐면. 이 말은 내게 '너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로 들렸기 때문이다. 근데 가장 빡치는 게 가장 팩트에 가깝다고 했던가. 어렸을 땐 나는 정말 나만의 특별함이나 개성이 없는  같아 늘 고민했다. 없는 재능을 감추기 위해 정말 성실하게 살았다. 


 성실함은 불확실하다. 반반이다. 성실하게 살아도 잘될지 안 될지 모른다. 이에 반해 재능은 확실하다. 애매한 재능이 아닌 진짜 재능은, 될지 안 될지 누가 봐도 안다(외모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버는 승리한다' 이 말 별로 안 좋아했다. 구차해서. 나도 재능을 갖고 싶었다. 재능은 구차하지 않으니까. 이런 내게 성실함은 숨기고 싶은 치부인데, 이젠 그 치부가 얼굴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꼭 상처 받았다.




 그런데 성실하면 날카로워질 수 있다니.... 너무 위로되잖아. 성실함이 재능이다 같은 클리셰는 많이 들어봤다. 근데 '성실하면 재능이 생길 수 있다' 라니. 이 워딩을 그 자리에서 바로 생각해낸 거면 놀랍고, 이 같은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일류 작가는 다르구나. 


 그의 말에 더 격렬 속고 싶었던 건. 그 걸어온 길 여타 다른 일류 작가들이 걸어온 길과 다르기 때문이다. 막 19살에 신춘문예에 등단해서 직업 한 번 안 갖고 평생 전업작가로 산 게 아니라, 그는 기자로 오래 일을 하다가 자신만의 글을 부엌 식탁에서 완성해서 소설가가 됐다.


 이런 사람이 말하는데, 성실 하디 성실한 얼굴을 가진 내가 위로를 받지 않을 수가 있나.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누가 내게 '굴이 되게 성실하게 생기셨어요 ㅎㅎ'라고 한다 여전히 빡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웃으며 넘길 것이다. 하지만 으로 말해야지. 그래 나 성실하다. 그리고 성실하게 날카로지고 .



이전 16화 먹방을 과식하는 요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