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일상 속에 실패들은 스마트폰과 앱의 발달로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카톡을 보낼 때. 나는 내 메시지가 중간에 없어지거나 도착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메시지를 너무 많이 보내는 것이 문제다. 심각한 길치인 나도 카카오 맵과 함께라면, 당당히 무리의 앞장을 선다. 넷플릭스는 장르별로 내가 좋아할 영화들만 선 보인다. 가끔 영화를 보는 것보다, 볼 영화를 고르는 게 더 재밌다.유튜브에는 하루 종일 봐도 모자랄,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들이 수없이 날 기다리고 있다. 배달음식을 시킬 땐? 무조건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한다. 내 한 끼는 소중하니까. 이성을 만나기 위해 이젠 친구에게 소개팅을 부탁할 필요도 없어졌다.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가 지금 시대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실패가 없어진 현대를 '2019, 멋진 신세계'라고 말할까? 당시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세상에 대해 이 두 사람의 할 말이 궁금하다. 멋진 신세계의 환각제 '소마' 같기도 하고, 1984의 '빅브라더' 같은 이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물론 차이는 있다. 소마와 빅브라더가 타의에 의한 강제라면, 이 스마트폰은 자의로 강제된다는 차이? 미래를 반만 맞힌 실패한 예언자들에게도 복채를 줘야 한다면. 무제한 요금제지만 느린. 3G폰을 주겠다.
문제는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실패다. 이 실패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졌다. 왜냐하면 일상 속 실패들의 경험이 줄어들면서 실패에 대한 면역력도 줄었기 때문이다. 이젠 실패의 평범한 잽 한 번에도 나는 바로 휘청인다. 나는 이렇게 약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나는 실패에 대한 맷집이 좋은 편이었다. 내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과장 안 하고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실패였다. 실패가 곧 나였고, 내가 곧 실패였다.
실패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참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릴 적 태권도 관장님은 내 운동신경을 보고, 나를 체능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나도 태권도 선수가 되는 계획을 세웠지만, 키가 안 컸다. 델리스파이스의 어느 노랫말처럼. 겨우 160이 됐을 무렵 했던 첫사랑. 중학생이었지만 나는 그 아이와 결혼을 계획했다. 그리고?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 입시는 어떤가.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던 수시에 다 떨어지고 버스로 3시간 걸리는 대학에 들어갔다. 군대도 웃겼다. 군대 중 휴가가 많고 공부할 시간도 많다고 알려진 곳에 지원했다. 당시 일반병은 뺑뺑이로 보직을 받았는데 나는 취사병이 되었다. 하루에 1500개의 식판을 닦으며 공부 대신 담배를 배웠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실패들을 겪으며 느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쓰라렸지만 이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실패들은 분명 나를 훈련시켰다. 실패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줬다. 그 예로 이십 대 후반, 취업의 고비를 넘지 못할 때. 나는 돈이 없어서 몸이 힘들었지만,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다.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에 프로 실패러인 내가 쉽게 취업하리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랬던 내가 약해졌다. 그리고 약해진 내가 어떤 실패를 경험할 때, 그 실패가 가진 실제 크기보다, 훨씬 더 크게 체감되고 있다. 요즘 나는 조그만 것에도 쉽게 좌절하고 쉽게 무너진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이 없는 시절로 돌아가자! 라고 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은 분명 유용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실패 면역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덜 사용하는 것.' 이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과 어플들로 없애버렸던 실패들을 다시 불러내야지 뭐. 각자가 스마트폰과 어플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 다를 테니 절대적인 사용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불편을 감수하고, 어떤 일을 직접 해보는 것. 스마트폰의 장점인 편의성과 간접경험들을 내가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나는 전처럼 혹은 전보다 더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의 결말을, '실패를 겪었지만 그 실패들이 인생 사는데 큰 도움이 됐다.'라는 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실패는 너무 아프다. 성공한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를 돌아보면 안 아프겠지만, 나는 성공하지 못해서 그런가 아직 내 실패가 아프다.
다만, 실패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방주사처럼.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실패의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충분한 가짓수의 예방주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스마트폰 덕분에 아픈 예방주사를 자주 맞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살면서 계속 새로운 실패들을 마주할 것이다. 그때 조금이라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아프지만 실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인생은 앞으로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테니까. 인생은 실패를 견디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