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원 Jun 28. 2021

요즘 누가 사랑을 해요


 비가 와서 깼다. 올 거라 알고 있던 비였지만, 머리로 아는 거랑 잠옷과 이불이 습해진 걸 몸으로 느끼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기분이 거지 같았다. 그때 알람이 딱 맞춰 울렸다. 다시 한쪽 눈만 겨우 떠서 알람을 껐다. 눅눅한 이불에 도로 누웠다. 하지만 더 누워있으면 물렁해진 매트리스 밑으로 몸이 완전히 가라앉을 거 같았다. 발작하면서 이불을 발로 찼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푸른빛을 보고 있자니 아 씨발 하는 욕이 절로 나왔다. 자고 있을 때도 내 마음에 화가 고다. 뭐에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아침엔 항상 화가 났다. 상체를 일으켜 양쪽 눈을 겨우 다 떴다. . 비가 와서 그런가 욕을 두 번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산을 꺼내기 싫어서 부슬비 맞으며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우산을 씌워줬다. 괜찮다고 하려다가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서, 집에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려다, "저 앞에 건물이요." 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이런 친절은 어색했다.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유튜브를 봤다. 구글 플레이 광고에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가 나왔다. 반가웠다.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김연아 목소리인 줄 알았는데, 수현이었다. 광고는 별로 였지만 노래 들으려고 스킵 안 하고 광고를 다 봤다. 이래서 광고에다 좋은 노래 쓰는구나. 작은 노트북으로 3개의 시나리오를 번갈아 봤다.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비틀즈 음악을 갖다 써도 안될 것 같았다. '이럴 거면 그냥 다 때려치죠?' 라고 말하려다가 "같이 좀 더 써봐요." 라고 말했다.   


 지하철에 타서 집에 오는 내내 오아시스 노래를 들었다. Don't look back in anger, Live forever, Whatever, Wonderwall. 4곡을 돌아가며 계속 들었다. 밖에 나온다고 입은 청바지 안에 땀이 차서 불편했다. 슬리퍼는 잘 신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져 늦은 오후 시간이었는데도 창밖이 밝았다. 오아시스 노래는 단순하고 희망찼다. 오늘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에 답을 알았다. 그냥 저절로 알게 됐다. 사실 오아시스 노래는 핑계다. 그저 언젠가 시간이 해결해줬을 일이다. 머리가 맑아졌다. Don't look back in anger. 아직도 해가 너무 밝았다. 갑자기 지금 비 맞는 누군가 있다면. 꺼내기 싫었던 우산을 씌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닥쳐주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