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환 에세이 l 책여정
"이건 시도 에세이도 아니에요"
뭣이라? 그럼 대체 뭔데?
소설? 자기 계발서?
'내게 끄적이다'
아찔한 붉은 카펫 위에
정확한 지점에 낙하한 듯한 하얀 끄적임
정체가 궁금했지만
책을 받아 들고도 한참을
밀린 일에 몰두했더랬다.
그러다 인터뷰를 앞두고
카페에 앉아 인터뷰이를
기다리며 뭘 할까 고민했다.
머릿속에 산재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정리를 할까?
아니, 봐야 할 책이 있었지.
시도 에세이도 아니라던 그 책
자신한테 뭘 끄적인다는 책
나도 뭘 끄적여 볼 수 있는 건가?
책을 펼치는 순간 당황했다.
빼곡하게 들어찬 목차들
몇 글자 안 되는 글들
빤딱 빤딱 빛나는 종이 위에
끄적여 놓은 텍스트에
말문이 막혔다.
하필 펼친 곳이 '하하하'
기이하네 이거, 혼자 쓱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 책에 시선을 꽂았다.
P32, 약속 장소에 일찍 와서 끄적이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빛이 되어주고
방향을 알려주고
이정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해야 한다.
복잡한 내 머릿속을 어찌 알고
훅하고 잽을 날리는 이 끄적임은
뭐지?
다른 장으로 손끝을 놀려본다
P50, 롤러코스터 타고 내려서 끄적이다
인생은
롤러코스터라던데
그런 거 같네
근데 언제 올라
하늘과 제일 맞닿을 수 있을까
요즘 바닥에서 언제 하늘로 오를 수 있을까,
답답해하는 내 가슴에 연속 잽을 날리는 이 끄적임은
다시 앞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P31, 괜찮지 않아서 끄적이다
느려도 괜찮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행동하여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괜찮지 않다
맞다.
내가 괜찮지 않다.
까딱하다간 넉다운이 될 것 같아 다시 앞으로
P16, 삶이 막막해서 끄적이다
누군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가야 할지
멈춰야 할지
때론 돌아가야 할지
알고리즘이 나를 더 깊이
파고들어 헤어 나올 수 없게 하듯이
작가의 끄적임들이 나를 옭아맸다.
글 세계의 숏폼인가?
이 짧은 글들이 글을 타고 또 타게 하더니
내 주의와 신경을 온통 이 책에 머물게 했다.
끄적이고 싶은 것이 있다, 나도.
#끄적일시간
끄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데
- 끄적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끄적이다, 마녀책빵
내게 끄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숱하게 끄적이고 싶었던
순간순간이 떠올랐다.
끄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고
그것이 곧 나의 글, 나의 삶이기에
길을 걷다가 노래를 하다가
책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바라보다 이야기하다
웃다가 울다가
모든 순간에 마음이
끄적이고
시를 쓰고
노래를 하는데
끄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가 아니어도 괜찮다
에세이가 아니면 어떤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지금 끄적이고 싶은 대로
끄적이면 되는 것을
끄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작가는
에세이도 시도 아닌 기존 틀에서 벗어난
아리송한 책 '끄적이다'지만,
.
.
.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충 그림 따위나 글씨를 끄적인 것이 아닌
끄적임 자체가 바로 내 삶이자 전부인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리송하지 않았다.
작가의 끄적임으로
나는 내 삶을 엿볼 수 있었고
내 삶도 끄적임이 되고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놓쳐 버렸던 순간을
안타까워하면서
다시는 안타까워하지 않으려
기꺼이 끄적임을
시작했다.
#끄적임 1
끄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데
- 책, 내게 끄적이다를 읽으며 끄적이다, 마녀책빵
#끄적임 2
촉촉이 내려앉는 것이 좋다
뜰 뜨던 것들을 재워주는 것 같아
차분해지는 이 기분이 제법 좋다
이 비가 좋은 이유다
- 비 내리는 아침에 끄적이다, 마녀책빵
#끄적임 3
흔들려도 괜찮아
중심만 잡고 있으면
매달려 있어도 쫄지 마
흔들리는 게 아니라 춤추는 거니까
- 바람에 빙그르르 도는 빨래를 보며 끄적이다, 마녀책빵
책, <내게 끄적이다>…
이렇게 확실하고 명확한
끄적임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마음을 끌어내는
글이 또 어디 있으랴
나도 따라 끄적이게 해 줘서
고. 맙. 다
고 이 책을 향해 다시 끄적인다.
P216, 씩씩하게 끄적이다
그래
늘 그래왔잖아
그냥 쭉 가는 거야
그래 쭉 가보자고
준비 출발!
갈 데까지 가보는 거지 뭐
까짓것 달려보자고
늘 그래왔으니까
- 삶은 책, 읽어가는 날에 ‘내게 끄적이다 ‘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