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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 Mar 08. 2019

요즘은 어떤가요? 잠은 잘 자나요?

역무원 H

도쿄에서 내가 살았던 곳은 셰어하우스이다. 한 번 이사를 해서 두 군데의 셰어하우스. 나 자신부터가 포용력이 없는 인간인지라, 가능하면 셰어하우스로는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1년 남짓 살자고 원룸을 얻자니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나중에 살림 처분하는 것도 일이겠다 싶어 셰어하우스를 구했다.


첫 번째 셰어하우스는 방이 열다섯 개로, 규모가 꽤 큰 곳이었다. 나 같은 유학생보다는 직장인들이 많이 입주해 있었는데, 국적은 절반이 일본인이고 나머지는 한국,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입주하고 나서 처음 며칠은 한 부엌에서 다른 사람과 요리를 같이 한다는 것도, 같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는 것도, 같은 거실에 앉아서 TV를 본다는 것도 전부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갔다가 어둡고 긴 복도를 걸어 내 방으로 갈 때였다. 문득 외국에 홀로 나와 있다는 현실이 체감되면서 혼자 사는 원룸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면 너무 외로워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양 옆으로 난 열네 개의 방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도 나처럼 나라든 고향이든 어딘가를 떠나온 이들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나의 첫 셰어하우스. 딱 6개월을 보냈다. 저 식탁에 앉아 각자 만든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월드컵 경기를 보기도 했다.


다들 출신도 성격도 생활방식도 제각각인지라 그곳에서의 생활이 언제나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평범한 20~30대 일본 청년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통해 일본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이는 입주자들 중에 아마 내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흑흑)


내 맞은편 방에는 역무원이 살고 있었다. 사이타마 출신의 H는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고 일본으로 돌아와 역무원이 되었다. H는 일견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말투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인상과 달리 늘 그가 먼저 말을 걸어주곤 했다. 일본에는 무엇을 공부하기 위해 왔는지,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일본에서 여행은 어디를 다녀보았는지, 그리고 느낌은 어땠는지 등. 그가 근무하고 있는 다마 모노레일(多摩モノレール)을 처음 이용하던 날, 신나서 그에게 보고를 하자 활짝 웃으며 들어주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본에서는 자주 있는 전철 선로에서의 인명사고(일본에서는 人身事故, 즉 '인신사고'라는 말을 쓰는데, 사고라고는 하지만 사실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직후의 현장을 처음 목격했던 날, 내가 받은 충격을 가장 먼저 토로했던 상대도 H였다.  


H는, 아마 3교대 근무를 했던 것 같은데, 아침에 퇴근을 하든 오후에 퇴근을 하든 자기 전에는 늘 술을 마셨다. "마셔야 했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남들과는 다른 생활패턴 때문에 입주자들이 모두 모였던 다코야키 파티에도 빠져야 했다. 그런 그에게 일부러 술을 건넨 것이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갔다 오면서 플라스틱 위스키병 같은 것에 담겨 있는 '처음처럼'을 사다가 준 적이 있다. 그는 받아도 되냐고 몇 번이나 물으며 기분 좋은 듯 그 병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 '처음처럼'은 나중에 달걀 푸딩이 되어 돌아왔다. 아키타현(秋田県)에 갔다가 사 왔다며 건넨 푸딩.



이 푸딩을 받던 날 나는 그에게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은 집이 학교와도 일터와도 너무 멀어서,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이사를 가기로 결정한 뒤였다. 못내 서운한 표정과 함께 일본에서의 남은 시간이 행복하기를 빌어주던 H. 내가 그곳을 떠나고 얼마 안 있어 H도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다른 이로부터 전해 들었다.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기에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찍어둔 모노레일 사진을 볼 때면 으레 그가 떠오르곤 한다. 부디 술을 마셔야 잠이 드는 나날들이 그의 청춘을 빛바래게 하지 않기를.


다마 모노레일(多摩モノレ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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