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때까지
도쿄에 있을 때 야심 차게 브런치 연재를 시작해놓고, 몇 편 올리지도 않은 채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일본에서 돌아온지도 딱 2년. 일본에서의 1년 반은 학교와 일 때문에 잠잘 시간도 모자랐던지라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펴놓고 앉으면 깜박이는 커서가 최면술사의 시계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귀국 당시는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때라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일본에서의 추억에 대해 쓸 자신이 없었(다는 핑계)고, 그 뒤로 반년 조금 지나서는 팬데믹이라는 그야말로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시국'이 펼쳐지면서 순진한 문장으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적어나갈 자신이 더 없어져 버렸다.
그 사이 하늘길이 막히면서 소중한 인연들과 서울과 도쿄에서 재회를 기약했던 것은 지켜지지 못했고, SNS와 카카오톡, LINE 등으로 속상함을 토로하는 메시지만 늘어갔다. 나는 일본에서 만나던 남자와도 결국 '원격'으로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들과 만날 수 없었던 2년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한 인연들과의 이야기를 글로 되새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신이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눈 뜨고 일어나면 하루 만에도 뭔가 바뀌어 있는 세상이라는데, 2년이나 거슬러 가는 이야기가 너무 낡게 느껴지시려나? 하지만 추억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까.
그리고 인연에 대해 쓰기로 한 김에 도쿄라는 장소적 속성을 너무 부각하여 적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만났든 내 마음을 스친 인연이라 생각되면 장소나 시기를 따지지 않고 그냥 적어나갔다. 나는 동시성의 우주를 믿는 쪽인지라. 또한 서로의 의지에 따라 앞으로 얼마든지 만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보다는 어떤 섭리가 아니고서야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사람과의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했다.
또 한 가지, 이미 다른 매거진에 올렸던 인연에 관한 몇 편의 글 역시 이쪽으로 옮겨 번외로 실어 두었음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