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혼을 할까?

이혼의 이유 best 3

by JJ

한 조사에 따르면 이혼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외도

2. 폭력(폭언, 폭행)

3. 경제적 이유

4. 성격차, 참을성 부재, 시댁, 처가 갈등

5. 여성들의 권익 신장, 위자료 권리, 개인의 이기심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딸아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결석을 했다. 평소에는 내가 딸아이를 깨워서 학교를 보내곤 했는데 그날은 아무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회사일로 새벽에 출근을 해야 했고 아내와 딸은 함께 늦잠을 잔 것이다. 앞으로는 딸아이와 아내가 늦잠을 안 자고 학교에 잘 가리라 믿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딸과 아내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늦잠을 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관렴이 철저하고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게 살아온 나와, 시간개념이 자유롭고 상황에 따라 일을 편리하게 해결하려는 성향인 아내와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이것과 유사한 상황의 문제들이 수 없이 많이 발생한다. 똑같진 않지만 유사한 형태의 문제들이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습관, 에고(ego), 자라온 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해야 할까? 진부한 얘기지만 결혼생활이 파탄 나지 않으려면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런 인고(忍苦)와 수련(修練)의 시간이 없이는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상위 0.1%의 잉꼬부부와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는 화목한 가정만 상상하면 곤란하다. 그런 가족에 대한 판타지는 버리는 것이 좋다. 결혼은 낭만 소설이 아니고 리얼 다큐멘터리다.


에고(ego)가 강하고 아이덴티티가 확고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심과 이해심이 더 필요하다. 좋으면 너무 좋지만 싫으면 너무 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 좋은 것은 덜 좋아도 살아지지만 싫은 것이 아주 싫으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유지가 되어도 삶의 질이 떨어진다. 과거에는 싫어도 자식 때문에 살았지만 지금 그런 요행을 바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래서 결혼은 두리뭉실하고 유들유들한 성품을 갖은 사람들이 잘 산다는 말을 하는가 보다.


아이러니하다. 연애할 때는 서로 다른 면에 끌려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니 서로 다른 면 때문에 다투고 이혼을 하기도 한다. 이혼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는 폭력, 외도, 경제력으로 인한 이혼이 아닌 가치관의 차이나 성향, 성격, 참을성 부재, 시댁, 처가 갈등의 문제는 유연하게 대처하면 이혼을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데 아내는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난이도 별로 10단계의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레벨 1-2단계의 쉬운 문제들을 풀며 사는 부부들과 레벨 9-10단계의 고난도의 문제들을 풀며 사는 부부들은 결혼 생활의 질이 다르다. 고난도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다가 너무 힘이 들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꼭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빨리 이혼해야 한다.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지 못하는 것도 바보 같은 행동이다. 그러나 레벨 10단계의 고난도의 문제를 풀며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그 들의 인생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TV와 매스컴도 선기능을 해야 한다. 이혼이라는 주제를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면 안 된다. 요즘은 이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도 많고, 이혼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순기능도 있겠지만 역기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혼 후에도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은 좋지만 일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혼을 부축이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중요한 팩트는 "이혼해도 잘 산다"가 아니라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법"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이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이혼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A 씨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는 고액연봉자이다. 10년 이상 회사를 다니다가 최근 실직을 하고 중소기업에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새로 취업을 한 회사는 급여도 적고 하는 일은 더 힘들다. 회사 복지도 좋지 않다. 그로 인할 부부갈등으로 그들은 이혼절차를 밟고 있다. 이혼을 요구한 여자는 당당하게 말한다. 남편이 실직하지 않고 그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 녀는 이혼하면 과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자살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되듯이 이혼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어쩌면 살아내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이혼도 비슷하다. 헤어지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거듭말하지만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빨리 이혼해야 하지만 견디어 낼 수 있을 만큼은 견디어 내야 한다. 삶이 원래 그런 것이다. 견디어 내는 것이 삶이다.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과 사명감도 필요하다. 자살은 삶을 끝내는 것이고, 이혼은 결혼 생활을 끝내는 것이다. 더 심사 숙고 할 필요가 있다. 결혼 생활이 항상 즐거운 사람은 많지 않다.


지각하는 딸을 아내라도 깨워서 보냈어야지 않느냐? 아내까지 잠을 자는 것은 심하지 않으냐?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욕실에 머리카락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싸움이 발단이 되어 이혼을 한 사람도 있고, 감자를 먹는 방식이 달라서 그것으로 인한 사소한 감정싸움이 이혼까지 이르는 경우 있었다. 결혼 생활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부부와의 관계도 그렇고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고 견디어 낸 곰만이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수련(修練)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열반(涅槃)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는 것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살면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