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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상 Apr 30. 2024

목은시고-7) 설매헌 소부
(雪梅軒小賦)

설매헌 소부(雪梅軒小賦)


해돋이의 늙은이가 / 扶桑翁

깊은 깨달음 일으켜 / 發深省

도의 뿌리 견고하여 / 道根固

마음이 재처럼 차가워라 / 心灰冷

소쇄함은 속진을 벗은 풍표이고 / 蕭灑出塵之標

유한함은 세속을 초월한 경지로세 / 幽閑絶俗之境

맑기는 옥호의 얼음이 나온 듯 / 炯玉壺之氷出

상쾌하긴 요대의 달빛과 같아라 / 森瑤臺之月映

그대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를 탈태하고 / 爾乃謝語奪胎

송경(宋璟)의 매화부(梅花賦)를 환골시킨 / 宋句換骨

두 부가 세상에 유전하여 / 二賦流傳

천재에 기상이 뛰어나니 / 千載超忽

풍월 읊는 사람은 입 다물어 못 떠들고 / 風人噤以不譁

문장 짓는 사람은 적적하게 막혀 버렸네 / 騷客寂而彌鬱

한산자는 쓸쓸한 백발에 / 韓山子霜鬢蕭蕭

펄럭이는 삼베옷 차림으로 / 麻衣飄飄

우연한 담소를 생각할 뿐 / 思偶然之談笑

정녕스러운 부름을 꺼리는지라 / 嫌丁寧之喚招

섬계에 목란 노를 저어 건너서 / 叩剡溪之蘭槳

유령에 사신 수레를 달리다가 / 馳庾嶺之星軺

문득 중도에 험한 길 만나 멈춰서 / 忽中道而坎止

이에 식목수의 영접을 받았도다 / 乃息牧之相邀

죽방을 열고 들어가 / 開竹房

격자창을 내려다보며 / 俯風櫺

포단을 펴서 가부좌를 하고 / 展蒲團而加趺

노아를 끓여 숙취를 풀었네 / 烹露芽而解酲

주나라 아악의 재도를 읊으면서 / 吟載塗於周雅

은나라의 조갱을 상상하노니 / 想調羹於殷室

이는 쓸모없는 쓰임이건만 / 是惟無用之用

형체가 있음에 법칙도 있음일세 / 蓋有則於有物

나는 이제사 서역에 불교가 있는 것이 / 予於是知西域之有敎

혹 이와 비슷함이 있음을 알았도다 / 或於斯而甲乙

우로는 똑같은 은택이로되 농상에 중하고 / 雨露均是澤也農桑焉重

도리는 똑같은 꽃이로되 부귀에 어울리건만 / 桃李均是花也富貴焉宜

그 누가 눈과 매화와 우리 스님 사이에 / 夫孰知雪也梅也吾師也

정과 경이 서로 통하여 / 情境交徹

침개가 서로 따르듯이 / 針芥相隨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음을 알리요 / 罔或須臾之離也耶

한 가지 매화는 찬란하고 / 若夫一枝璨璨

일천 산에 눈이 하얄 제 / 千山皚皚

나는 새는 절로 끊기고 / 飛鳥自絶

벌 나비도 찾아오지 않아서 / 游蜂不偕

기화 속에 속진을 다 녹여 버리고 / 消塵滓於氣化

마음의 재계로 태극을 넓힌다면 / 浩大極於心齊

실로 배운 바에 도움됨이 있으리니 / 實有助於所學

높은 집에 설매 편액이 마땅코말고 / 宜其扁於高齋

지금 세월이 그 얼마나 흘렀던고 / 今歲月之幾何

정경이 다 아름다움을 오래 못 만났으니 / 阻情境之俱佳

후일에 묵은 병이 물러가고 / 異日沈痾去

불편한 행보가 편해지거든 / 蹇步平

울툭불툭 돌길에 가마를 타고 와서 / 鳴藍輿於石徑

한 번 구경하여 세정을 잊어 보련다 / 當一賞以忘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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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마음이 재처럼 차가워라 : 마음에 아무런 물욕(物欲)도 없이 맑고 고요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사혜련(謝惠連)의 …… 매화부(梅花賦) : 사혜련은 남조 송(南朝宋)의 문장가로서 그가 지은 설부(雪賦)가 매우 유명하였고, 송경(宋璟)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상(名相)으로서 그가 지은 매화부가 또한 매우 유명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3]섬계(剡溪)에 …… 달리다가 : 섬계는 시내 이름으로,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눈 내리는 날 밤에 흥이 나서 즉흥적으로 배를 타고 섬계 가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만나지는 않고 문밖에서 되돌아온 고사에서 온 말이고, 유령(庾嶺)은 예로부터 매화의 명소(名所)로 알려진 대유령(大庾嶺)을 가리키는데, 이 부가 설매헌(雪梅軒)을 주제로 지은 글이기 때문에 섬계의 눈과 대유령의 매화를 인용한 것이다.


[주D-004]주(周)나라 …… 상상하노니 : 재도(載塗)는 《시경》 소아(小雅) 출거(出車)에, “옛날 내가 떠나갈 적엔 기장과 피가 한창 무성했는데, 이제 내가 여기 돌아와 보니, 눈이 녹아 길이 질척거리네.[昔我往矣 黍稷方華 今我來思 雨雪載塗]” 한 데서 온 말이고, 조갱(調羹)은 나라 다스리는 방도를 비유한 것으로, 《서경》 열명(說命)에, “내가 만일 국을 끓이려거든 네가 양념 소금과 매실이 되어 달라.[若作和羹 爾惟鹽梅]”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역시 설매헌 주제의 글이기 때문에 《시경》 출거편의 눈과 《서경》 열명편의 매실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5]침개(針芥) : 자석(磁石)은 철침(鐵針)을 잘 흡인(吸引)하고, 호박(琥珀)은 개자(芥子)를 잘 습득(拾得)한다는 데서 온 말로, 사람의 성정이 서로 잘 투합(投合)함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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