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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Jun 13. 2021

고작 새우 두 마리에 서러움

개소리에 관하여

스타벅스의 쉬림프 코코넛 샐러드 밀박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메뉴에는 어김없이 두 마리의 새우가 있다. 먹을 때마다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닌 하필이면 두 마리라는, 그 정교함이 주는 위대함에 살짝 위축되곤 한다.

그런데 이 쉬림프 코코넛 어쩌고 하는 이름마저 긴 메뉴 덕에 사람이 좀 우스워진다. 그런 추한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 창피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가난한 대학생도 아니고 (소박하지만) 꾸준한 월급을 받으며 사는 내가 이렇게나 하찮은 것에도 '쿨'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라는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인가 라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이건 누군가의 그릇의 문제라기보다는 새우가 두 마리뿐이라는 것에 있다.  

이 새우 두 마리는 이 샐러드의 가장 핵심 재료다. (이름도 쉬림프로 시작하지 않는가?) 즉 새우를 빼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코코넛으로 만든 소스는 취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소스 만으로 배를 채울 수 없지 않은가. 두 마리의 새우 갯 수가 아쉬운 것은 이 밀박스를 대할 때마다 이겨내야 하는 심적 고통은 크기는 작을지언정 언제나 성가시다. 


이 서러움을 또 다른 이유를 들어 정당화해보겠다. 나의 경우, 이 메뉴를 시킬 때 다음과 같은 사고의 흐름을 거친다. 그러니까 다양하고도 복잡한 갈등을 이겨내고 마침내 주문하는 것이 이 말도 안 되는 쉬림프 코코넛 어쩌고라는 말이다. 케이크를 먹자니 살이 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샌드위치를 먹자니 케이크나 샌드위치나 칼로리는 비슷할 것 같은데 괜스레 억울하다. 하여, 이왕 체중관리하는 거 확실히 샐러드를 먹자 기필코 고른 것이 쉬림프 코코넛 샐러드 밀박스. 

하지만 아무리 다이어트라고 해도 좀 심한 거 아니냐. 조금만 부족하면 됐지, 6천 얼마에 딸랑 새우 두 마리라니, 건강식이니, 다이어트니라는 겉 빛 좋은 낭설에 바가지가 씌는 기분은 어김없다. 이번만 먹고 다음번엔 호구가 되지 않을 테야. 마음속으로 되도 않는 다짐을 하는데.  오늘 또 이 새우 코코넛 밀박스인지 밀키트인지를 먹고 억울한 마음에 글 쓰고 앉아 있다. 


"B-20번 고객님, 쉬림프 코코넛 샐러드 밀박스와 아메리카노 한잔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우 먹는 시간을 늘리며 조금이라도 포만감을 더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애석한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 가지런히 놓여있던 두 마리의 새우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늘 하나가 아쉬운 두 마리라는 그 절묘함.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두 마리. 

아마도 스타벅스는 알지 않을까. 세 마리가 들어 있다 한들, 고객의 곯은 내 배가 채워지지 않으리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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