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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Oct 25. 2024

[부록] 엠알케이

러브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 세대에겐 ‘엠알케이’라는 잡지도 있었다. ‘미스터 케이’ 혹은 ‘Mr. 케이’라고도 불렸던 이 잡지는 98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초등학생에게 인기였다. 

90년대 여자 아이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던 팬시 잡지 MR.K가 있다. 1998년에 창간되었고 미스터 케이, 엠알케이 등등으로 불렸다. 

잡지의 절반은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편선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르는 선을 따라 일일이 가위로 자르고 풀을 칠하는, 그야말로 아날로그식 노동이 필요한 것들뿐이었지만 우리는 열과 성을 다하는 그 과정 자체를 즐겼다. 

완성된 편지의 모양은 전형적이고 납작한 직사각형의 형태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실제 과자 상자처럼 생겼다든지, 금고 모양으로 만들어진다든지 하는 입체형이라 한 곳에 야무지게 보관하기도 애매했다. 엄마는 내가 엠알케이를 집에 가지고 들어올 때마다 쓸데없는 걸 또 샀다며 잔소리 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건 여자애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잡지에는 편선지들 뿐 아니라 심리 테스트나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 운세, 연예인에 대한 기사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잡지에 실린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책에 적혀 있는 이야기보다 이 출처가 불분명한 찌라시들이 왜 더 재미있는 건지. 특히 매월 호마다 쌍둥이자리의 운세와 O형의 궁합을 놓치지 않았고 심리 테스트는 친구들과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이 깜찍한 문방구형 잡지에는 간판스타들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두 캐릭터는 바로 콩콩이와 발렌이라는 일러스트 캐릭터다. 콩콩이는 작은 단추 같은 두 눈을 가졌고 다갈색의 양 갈래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묶었다. 콩콩이가 똑소리 나는 야무진 느낌이라면 발렌은 크고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하늘색 단발머리를 한 이국적인 소녀였다. 소다미, 코딱지, 포타토, 빤쯔 등 더 많은 캐릭터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기억이 흐릿하고 대신 열심히 편선지의 자르는 선을 따라 가위질하고 풀에 떡이 된 손으로 친구들을 위해 편지를 쓰던 시간들만 선명하다. 

2023년 7월에 텀블벅에서 한시적으로 이 추억의 편선지를 판 적이 있다. 엠알케이를 주문하려는 나와 비슷한 세대들로 인해 서버가 마비되었다. 심지어 1만 명 이상의 후원자가 펀딩에 참여하면서 5억이 모였다고 했다. 

무용하다고 여겨지던 90년대의 추억 아이템이 부활하여 텀블벅 사상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이다. 날짜를 너무 늦게 안 탓에 구매하지 못했지만, 만약 시기가 맞았더라면 단연코 가장 비싼 리워드를 선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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