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딩들은 자신의 존재를 손끝으로 담았다. 연필을 쥐고 글자를 눌러 담는 행위는 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서로에 대한 우정을, 그리고 마음을 전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아깝지 않았다. 기꺼이 그러리라 생각했다.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들은 다이어리 꾸미기나 펜팔, 교환 일기 같은 형태로 구체적인 형상과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다이어리 속지를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나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감성적인 글귀, 그리고 앙증맞은 그림으로 꾸미면 마치 삶의 한 부분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것 같았다. 친구와 나누던 교환일기도 그랬다. 서로의 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우리의 존 재가 어디에서나 서로 맞닿아 있음을 기억하게 했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손으로 만들던 아날로그적 감성은 고학년이 되면서 여기저기 싹트기 시작하는 연애라는 새로운 관계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5, 6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많아졌다. 사랑이 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저마다 짝사랑 하는 애 하나 쯤은 있었고, 그 가운데는 커플이 심심찮게 탄생하기도 했다. 어 떤 커플은 꼭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할 것 같았다. 어떤 커플은 말도 안 되게 안 어울렸다. 누가 아깝네, 왜 사귀는지 모르겠네, 우리끼리 품평회를 했지만, 사실 부러운 마음이 더 컸다.
중학생 언니들을 따라 우리에겐 ‘러브장[러브-짱] 만들기’ 라는 독특한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자 친구를 위해 여러 가지 사랑의 글과 그림들로 노트 한 권을 채우는 풍속이었 다. 여자애들은 사랑이 넘치는 노트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며칠 혹은 몇 주를 할애하고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온전히 타 인을 위해 나의 시간이나 노력을 담는 일. 그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함께 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애들은 러브장을 썼다. 노트 한 권 전체를 편지나 글로만 채우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페이지에 는 그림을, 어떤 페이지에는 퍼즐을, 어떤 페이지에는 디자인을 해가며 여러 가지의 시각화 된 사랑을 담았다. 그것을 보자면 아이들이 가진 사랑이 얼마나 다채롭고 창의적인 형태로 구현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완성된 러브장을 읽기 위해서는 적잖은 항마력이 필요하다. 온통 펜으로 엉켜있는 곡선을 마구 그려 넣은 후
“이 선의 끝을 찾는 날, 우리의 사랑은 끝나는 거야.”
같은, 지금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어떻게 돼버릴 것 같은 멘트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에는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그림과 함께
“키싱구라미는 짝이 죽으면 살지 못한데.. 외로워서 죽기도 하고 굶어 죽기도 한대. 그런데 어쩌지? 나도 키싱구라미가 되어 버렸어. 너 없으면 살지 못하니까…”
라는 글도 있었다. 마구 구겨져 있는 페이지에는 어김없이
“이건 쓰레기가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버린 내 자존심입니다.”
라는 단골 문장이 있었고 말이다.
러브장은 누가 누구에게 쓰든 내용이 거의 같았다. 아이들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러브장 이미지들을 보고 그대로 베꼈다. 친구가 만들어 놓은 러브장을 따라 하며 수월하게(?) 노트의 페이지들을 채워 나가기도 했다. 심한 경우에는 친구들에게 외주만 잔뜩 줘놓고 정작 본인은 쏙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한때 러브장 좀 받아본 남자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러브장의 창작자가 당신의 여자 친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글씨 이야기부터 시작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글씨를 좀 쓰는 편이었다. 사실 좀 쓰는 정도가 아니었고 아주 잘 썼다. 중학교 3년 내내 학급일지를 담 당하는 서기였고 친구들도 나를 예쁜 글씨체, 하소연으로 알아 주곤 했으니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잘하는 걸 하는 건 즐거 운 일이었고 더 잘하고 싶게 만들었다. 나만의 다양한 글씨체를 만들어 기분에 따라, TPO에 따라 바꿔가며 노트를 채워 가는게 취미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공식적인 기록에는 ‘키 큰 체’를 썼다. ‘키 큰 체’는 자음이 긴 형태에 이탤릭체처럼 오른쪽으로 살 짝 누워있어 어른스러운 느낌이 있는 글씨체였다. 이 글씨체를 쓰면 친구들은
“와 소연아, 네 글씨 꼭 어른 같아.”
라고 했다. 국어나 사회 노트에 필기할 때는 ‘바른 체’를 썼 다. 모든 획을 순서대로 쓰고 모서리는 살짝 부드럽게 둥글린 글 씨였다. 가상의 정사각형 칸 안에 한 글자 한 글자씩 바르게 쓴 그 ‘바른 체’는 자간과 행간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글씨 중에 가장 좋아하는 형태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모음이 비대하게 큰 ‘귀여운 체’를 썼다. 그렇게 쓰인 편지는 항상 들뜬 목소리로 읽게 되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반대로 심기가 뒤틀려서 만사가 다 귀찮 은 날에는 ‘바쁜 체’를 썼다. ‘바쁜 체’는 대충 휘갈겨 쓴, 말 그대로 바쁜 척하는 글씨체였다.
글씨를 잘 쓰려면 필기구도 중요하다. 때마침 문방구에는 ‘하이테크’(어떤 지역에서는 하이텍C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하이테크C’가 공식 명칭인 듯하다)처럼 펜촉이 아주 얇은 일본 브랜드의 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필기구를 색색별로 모으는 것이 유행이었다. 국산 브랜드의 펜들보다 훨씬 비쌌기에 사치품과 다름없었다. 때문인지 펜을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고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미신도 있었다. 마치 그해 여름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다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처럼 말이다. 90년대 아이들은 사랑에 진심이었으니, 누구도 비싼 펜을 빌려주지 않을 합당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었다.
하이테크와 버금가는 ‘젤리 롤’ 펜도 인기였다. 젤리 롤은 펜촉이 조금 굵긴 했지만, 파스텔 톤의 잉크가 종이에 깔끔하게 맺혀 다이어리 꾸미기에 적합했다. 아이들의 필통은 하이테크와 젤리 롤로 점점 더 비대해졌다. 뚱뚱해진 필통과 장비 덕으로 내 글씨 실력은 한석봉만큼 나날이 일취월장 했고 말이다.
나처럼 글씨를 잘 쓰는 애들이 친구들의 러브장 만들기 노동에 동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남친이 있는 애들은 꼭 내게 자기네들의 노트를 내밀며 이렇게 부탁했다.
“소연아, 여기에 네 글씨로 써주면 안 돼?”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나 조금 귀찮은 듯, 무표정으로 알겠다 고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글씨가 예쁘다는 것을 인정받았 다는 생각에서였다.
친구의 러브장을 써주는 일에는 곤혹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편지를 쓸 때. 원본은 주인이 쓰고 그걸 그대로 예쁜 글씨 로 수첩에 옮겨 적는 작업이었다. 편지를 옮겨 쓰는 노동을 하며 내 친구가 그녀의 남자 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러면 친구의 어떤 내밀 한 부분이 나에게도 스며드는 것 같았다. 친구는 사소한 것부터, 남친의 고마움이나 소중함을 시시콜콜 써놓았다. 신기했다. 내 눈에는 그저 멍청이 같았던 그 남자애에게도 다정한 면이 많다 니. 깊이 알면 소중해지는 법인가.
물론 감동을 받는 순간은 찰나였을 뿐이고 대부분은 부아가 치 밀어 올랐다.
‘이런 오글거리는 편지는 지가 좀 쓰지…’
차마 못 봐줄 정도로 내용이 별로인 경우에는 최대한 영혼을 빼고, 오직 글씨체에만 치중해 썼다. 그 와중에 맞춤법이 틀리는 아이들의 사랑에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러브장 꾸미기는 무척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다. 게다 가 러브장을 부탁한 아이들은 나의 노동의 대가로 떡볶이를 사 주거나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는 스티커 같은 것을 주기도 했으 니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매번 키싱구라미 밑에 “키싱구라미는 짝이 죽으면 살지 못한데.. 외로워서 죽기도 하고 굶어 죽기도 한대. 그런데 어쩌지? 나도 키싱구라미가 되어 버렸어. 너 없으면 살지 못하니까…”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멘트를 쓰는 것이 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내게 곧 생길 수도 있을 남자 친구를 상상하며 최대한 정성을 들였다.
‘내가 미래의 남자 친구에게 만들어 줄 러브장은 조금 다르게 해야지. 이건 연습이야.’
물론 내겐 학창 시절 내내 러브장을 줄 남자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기에 이와 같은 노동은 무용한 일이었다.
덧.
누군가를 위한 편지를 쓴다는 것은 나의 시간과 존재를 들이는 일이다. 글을 읽을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은 작은 우주를 만들어 내는 일 같았다.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록 그리고 펜으로 그 마음과 그에 대해 눌러 담을수록 애정이 깊어졌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순전히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는 내가 좋았다.
하여 여전히 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손으로 글 써준다. 깊이 알게 되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었다. 유일무이한 당신. 그를 그릴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