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에 전학 온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새로운 학교에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내일이면 내 생일 잔치를 하는 날이다. 지금의 나보다 젊었을 엄마는 하나뿐인 딸을 위해 과자니, 과일이니 하며 생일상을 위한 장을 봐왔다. 둘째 이모네 딸인 미경이의 공주님 드레스를 빌린 건 벌써 지난주의 일.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아홉 살 생일 파티였다.
거실은 풍선과 화려한 파티용 장신구들로 꾸밀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만든 초대장도 완성되었겠다, 갖고 싶은 선물을 생각하느라 단꿈에 빠진 나는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딱 한 가지 사실만 빼놓고 말이다.
한층 들떴다가도 이 생각만 하면 갑자기 돌이라도 씹은 듯 기 분이 나빠졌다. 사촌 동생들과 밤늦도록 신나게 놀고 있는데, 집 에 가자는 아빠의 목소리에 분위기가 팍 식어버릴 때처럼 기분 이 구렸다. 마감 기한이 올 때까지 묵혀 놓은 숙제인 것처럼 한 쪽 구석에 드리워진 마음의 그림자. 바로 그 사소한 문제의 실체는.
아직 반 친구들은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
소심했던 나는 도저히 하트 모양의 분홍 초대장을 책가방에서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 생일이 이번 주 토요일이니, 와서 축하해달라는 말을 하기가 몹시도 부끄러웠다. 생일 날짜와 우 리 집 주소가 가지런히 적혀 있는 스물 몇 장의 초대장은 갈 곳 을 잃고 이틀째 책가방 속에서 교과서와 함께 부대끼는 중이었다.
아홉 살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사회는 이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 랐다. 친구들과 별것 아닌 일로 편을 나눠 다투기 시작하던 때도 그즈음이었고, 일종의 ‘평판’이란 것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김선미랑 놀지마. 쟤 엄청 예쁜 척 해서 애들이 싫어해.”
짝꿍이 내가 전학 온 날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하지만 김선미 는 예쁜 척하는 게 아니라 내 눈에도 정말 그림처럼 예뻤다. 어 떤 날은 양쪽으로 머리를 말아 그물망에 쏙 넣기도 했고 어떤 날 은 반묶음의 머리에 구슬구슬한 웨이브를 넣어서 영락없는 만화 영화의 주인공의 모습으로 학교에 오곤 했다. 얼굴은 투명하고 하얘서 턱이나 이마에 있는 푸르스름한 핏줄이 옅게 보였다. 동그란 이마 선을 따라 내려온 곳에 크고 까만 홑꺼풀의 눈이 있었고, 그 먹색의 깊은 눈을 마주할 때면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선미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얼핏 유명 배우의 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엄마를 똑 닮았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누군지 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스럽고 예쁜 선미를 질투했다. 촌스러운 시샘의 감정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우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남자애들 앞에서 귀 뒤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예쁜척 한다는 그런 종류의 것들. 남자애들 앞에서 목소리가 달라진다는, 뭐 그런 유치한 것들. 때마침 김자옥 아줌마의 노래 ‘공주는 외로워(1996)’가 유행하면서 ‘공주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그것이 곧 선미의 별명이 되었다. 유난히 놀림을 심하게 받은 날, 그 애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관계의 역동 속에 있다 보니 잔뜩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초대장을 주기도 전에 왠지 애들이 나를 싫어할 것 같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분홍색 초대장이라 공주병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전학 온지 얼마 안 돼서 애들이 오기 꺼려하면 어떡하지.’
갖가지 상상이 물감처럼 번져 나갔다.
물론 걱정과는 별개로 오늘까지 기필코 친구들에게 내 생일의 존재를 알려야만 했다. 안 그랬다가는 모든 것이 망해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생일도, 나의 아홉 살 작은 사회 속의 친구 관계도, 열심히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을 우리 엄마도.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온통 초대에 대한 부담으로 가득한 199X년 6월의 한 금요일이 시작되었다.
벌써 이십 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요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초딩들의 생일 파티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학교 가 끝난 토요일17) 점심에 치러졌던 것이다. 그러니 생일을 알릴 수 있는 마지노선은 금요일인 셈. 부모님께 허락받고, 생일 주인 공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만약 학원이 있다면 시간을 조정하 는 일이 일사불란 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는 게 고질병이었던 난 당연히 초대장을 아이들 에게 주지 않은 채로 금요일까지 버티기에 이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막상 초대장을 주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오 자 어제의 내가 밉고 한심해졌다. 과거의 내가 초대장을 나눠 줬 더라면 오늘의 나는 편했을 텐데. 이 모든 일을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막막한 현실은 아홉 평생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까. 심란한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의 시간은 무심하고 태 평하게, 지극히 일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1교시. 선생님은 한 시간 동안 원숭이처럼 널뛰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다섯 번 집중의 박수를 치게 했고 교탁의 황색 앉은뱅이 종을 열세 번이나 울리고 나서야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의 1교시는 졸리지도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그날만큼 나에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도 나도, 서로 각자의 이유로 지친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엘리제를 위하여’ 멜로디의 익숙한 종료종이 울리고 첫 번째 쉬는 시간이 되었다. 빨리 해치워 버려야지, 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책가방 안으로 쓰윽 손을 집어넣었다. 스물 몇 장의 두툼한 초대장이 손끝에 잡혔다.
하지만 이내 그 초대장들의 부피감이 손 끝에 느껴지는 순간, 그러니까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이것을 나눠줘야 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숨기듯 재빠르게 책상 서랍 속으로 쑤셔 박았다. 이미 수학 익힘책이니, 슬기로운 생활이니 하는 교과서로 뒤죽박죽인 서랍 안에 초대장이 또 다른 자리를 차지했다.
결국 초대장 주기 미션은 다음 쉬는 시간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내가 잘 해낼 거라는, 이번에는 다소 불안한 자신감에 기대어 보았다. 2교시 수업도 선생님에게는 벅찼다. 아이들은 1교시보다 더 사납게 떠들었고 지칠 줄 몰랐다. 집중의 박수도 교탁 위의 앉은뱅이 종도 쉬지 않고 울어댔다.
2교시 쉬는 시간에는 우유 급식의 시간이라는 핑계를 대며 내 할일을 미뤘다. 우유 급식은 언제나 아이들을 예민하게 했다. 그 러니 남아 있는 마지막 기회는 오직 3교시 쉬는 시간 뿐. 이 시 간이 지나면 아무도 초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에는 꼭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도 또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고작 40분의 수업이 엿가락 처럼 늘어져 세 시간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찰나 같았다.
드디어 수업 종료종이 울린다. 눈을 질끈 감고 엉망인 서랍 속 에서 초대장 스물 몇 개를 꺼냈다. 이번에는 결딴을 내야만 한다 는 생각으로, 이것조차 못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의 위대한 일꾼이 될 수 있겠냐, 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비장하게.
기세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분홍색 하트모양의 초대장 을 들고 있는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이수민이었다.
포니테일 모양으로 질끈 묶은 그 애의 머리가 공중에서 흔들렸 다. 수민이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 내일 내 생일이라… 초대하고 싶어서…”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니 수민이는
“내일이라고?”
하며 초대장을 애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초대장에는 초대 한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민이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 쑥스럽고 많이 고마웠다. 앞으로도 이 아이가 나를 몇 번이나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건져 줄 사람이라는 걸, 서른이 한참 넘어서도 베프로 지내게 될 아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와중에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 서동휘가 초대장에 쓰여져 있는 자신의 이름이 틀렸기 때문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그 애 이름이 ‘서동희’로 적혀져 있었다. 획 하나 차이인데 뭐가 그리 난리인가. 난 내 이름 소연이를 수연이라고 해도 그리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동휘는 앵그리 버드처럼 두껍고 진한 눈썹을 치켜세우고 커다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니 생일에는 안 가! 절대 안 가!”
걔는 학교가 끝날 때까지 나를 쪼아댔고,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지쳐 버리고 말았다.
서동휘와 사이는 틀어졌지만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나눠주고 나니 몇 년 묵은 변이 내려간 듯 홀가분했다.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이제 행복한 생일만을 맞이하면 된다는 생각에 근심 없이 토요일을 기다릴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 얼른 공주님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도착하니 엄마는 어느새 거실을 풍선이나 장식들로 꾸며 놓았고 거실 한가운데에 펼쳐진 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피자, 떡볶이 같은 것들이 차려져 있었다. 새하얀 공주님 드레스까지 입으니 내가 이 세상의 주 인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초대장에 써놓은 약속시간인 한 시가 되기도 전에 1003호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작은 발소리들과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넘쳐 나기 시작했다. 음식들은 고른 속도로 없어졌고 엄마는 적당한 때를 정해 내게 생일 케이크를 불게 했다. 친구들이 입을 모아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앞으로 생일마다 부를 노래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내 친구들을 위해 몇 가지 게임을 준비했다. ‘눈 감고 스케치북에 동물 그리기’, ‘과자 따먹기’, ‘얼굴에 붙은 포 스트잇 빨리 떨어뜨리기’처럼 못하면 못 할수록 더 재밌어지는 것들 뿐이었다.
생일 주인공의 집이 쑥대밭이 될 정도로 뛰어놀다 각자의 자리 로 돌아가는 것. 그마저도 모자란다면 동네 놀이터에서 해가 뉘 엿뉘엿 질 때쯤까지 술래잡기나 피구를 하며 맘 놓고 시간을 보 내는 것. 그게 90년대식 초딩 생일의 풍경이었다.
초대받은 아이들은 그냥 오는 법 없이 꼭 근처 문구점에 들려 작은 선물들을 준비해 왔다. 대부분이 2-3,000원짜리로 학용 품이나 작은 인형이었고, 책이나 장난감 같은 것도 있었다. 아이 들은 보통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선물로 주곤 했다. 그러니까, 김상준이 나에게 준 부르마블은 그 애가 그 시기에 꼭 갖고 싶었 던 물건인 셈이다. 누구도 네가 3,000원짜리를 사줬으니 나도 3,000원짜리를 사주겠다, 라고 계산을 하며 선물을 고르는 일은 없었다.
손익을 따지기에 아이들은 아직 어렸다. 얼마 짜리인지 보다는 몇 개의 선물을 받았느냐가 더 중요했다. 때문에 그날 내가 받은 선물이 무려 스물 몇 개라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물을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퇴근한 아빠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았는지, 친구들이 내 생일에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자랑했다. 그 선물들은 책상 가장 아래에 있는 서랍 속에서 나름의 규칙과 질서로 나열된 채 하소연의 뜨겁고 만족스러운 시선을 여름 한철 내내 받게 될 운명이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큰 선물은 엄마로부터 받은 그날의 생일 잔치였다. 다른 누구보다 내 딸에게 가장 좋은 생일을 차려주고 싶다는 그 욕심. 내가 사춘기 시절 그토록 지긋지긋해 했던 엄마의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가장 애틋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남겼다. 세상에 맛있는 것은 모두 다 가져다 놓은 것 같던 생일상, 영화에서나 볼 법한 하얀색 공주님 드레스, 풍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거실. 대체 무슨 마음이길래 그렇게 날 깊게 사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