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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Oct 07. 2024

일기쓰기

글을 쓰며 살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얘들아, 일기는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하시며 작은 종이를 나눠 주었는데, 그 안에는 내가 일기에 쓴 <작은 아씨들> 감상문이 인쇄되어 있었다. 받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기분이 꽤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벌렁댔다. 받아쓰기나 수학 연산이 아닌 창작의 영역에서 칭찬을 받아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이것이 하소연의 글이라며 큰 소리로 반 친구들에게 읽어주시기 시작했다. 


엄마께서 재미있는 형제 간의 우애 얘기라며 이 책을 사주셨다. 

네 자매에서 첫째는 메기, 둘째는 죠, 셋째는 베스, 넷째는 에이미다. 메기는 휜(흰)피부에 고운 손을 갖고 있다. 죠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이다. 베스는 피아노를 좋아하는 수줍음쟁이이고 마음씨가 곱다. 에이미는 뽑(뽐)내기를 좋아하는 소녀다. 마음은 다르지만 때론 마음이 잘 맞아 사이가 좋을 때도 있다. 특히 베스가 성홍열에 걸렸을 때 언니들이 서로 도와주고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 내용은 나를 너무 감동 시켰다. 나도 4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고 여자 동생이었으면 더욱 좋을 거 같다. 

난 남동생이 있어서 자꾸 자꾸 싸워서 싫다. 좀 해결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도 없고 내가 놀아주어야만 하는 것이 어느 때는 정말 싫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형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따. 어려울 때 도와주고, 위험에 빠졌을 때 도와주니까 말이다. 

나도 베스처럼 환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생이 1학년이 되면 이 책을 꼭 물려주고 싶다." 


선생님은 내 글을 낭독 해주신 후, 반 친구들에게 일기 쓰는 법에 대해 말씀 하셨다. 일기에는 하소연이 쓴 것과 같은 독후감이나 만화, 시, 소설 같은 걸 써도 된다고도 하셨다. 글에는 항상 본인이 느낀 감상도 곁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하소연의 글처럼 느낀 점, 배운 점을 쓰는 거라고. 사실을 나열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오늘’, ‘나는’이라는 단어들로 일기를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시대 모든 초등학교 선생님이 했을 법한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수업 끝에 선생님은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소연이는 글 쓰는 재능이 있구나.”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타고 태어난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내게 평생 주어지지 못할 특권을 쥐여준 것 같은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따뜻했다. 

재능이란 단어에 다정함을 느낀 이유는 언제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서 간신히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나의 아둔함에 있었다. 오른손, 왼손을 구별하느라 일주일은 엄마랑 씨름했고 받아쓰기나 수학도 언제나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했다. 노 력하는 순간이 즐겁지 않았다. 무언가를 수월하게 해나가는 친 구들이 부러웠고 그것은 대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지배하는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에 더 매달리고 싶 었다. 

일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글마다 감상과 배운 점을 꼭 넣었 다. 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있는 날은 기분이 무척 좋았고 ‘참 잘했어요’ 도장이나, ‘검’ 도장만 찍혀 있는 날은 왠지 실망 스러웠다. 그러나 노력 할수록 그날 같이 내 일기가 친구들 앞에 서 낭독되는 일은 다시 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글을 잘 쓴다느니, 재능이 있다느니 하는 칭찬은 아주 까먹어버린 듯 아 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후로 몇 주, 아니 몇 달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도, 아주 빠르게도 지나가니 말이다. 어느 날 선생님은 또 하나의 인쇄물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이번에 는 내 글이 아니었다. 우리 반 누군가의 가족 여행기였다. 심술 이 난 나는 작은 흠이라도 잡아내기 위해 눈으로 쓰윽 읽었다. 놀랍게도, 그리고 씁쓸하게도 그 글은 무척 재미있었다. 자꾸만 내 독후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많이 양보한다 쳐 도, 그 아이의 압승. 

선생님은 낭독해 주신 후, 다시 반 아이들에게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생동감을 주면 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 다양한 어휘 사용과 세밀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이나 ‘나는’이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업 끝에 선생님은 그 다정한 눈빛으로 글을 쓴 주인에게, 

“재능이 있구나.” 

라고 하셨다. 선생님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동안 의지했던 ‘재능’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니. 어쩌면 내게도 하나쯤은 타고난 것이 있을 거라 간절히 믿었던 바람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문득 그렇게 애태우며 쓰던 내 글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되돌려 받은 일기를 펴던 그 순간의 두근거림과 선생님이 달아주는 코멘트에 기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던 모든 시간들이 우스워졌다. 내 감정에만 몰두한 나머지, 선생님이 마흔 명도 넘는 아이들의 일기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 어느덧 나는 어른이 되었다. 커가면서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 일은 더욱 줄어들게 되었고 재능이라는 말은 더더욱 들을 일이 없었다. 위대한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지성과 문체, 아이디어, 그 어느 것 하나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쓰기를 멈추고 싶을 때도 많았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게 삶을 바꾸고 천지를 개벽시킬 큰 재능이 있던 것은 아니라고. 모범생이었던 내가 또래보다 철이 조금 더 

빨리 들었고, 그 때문에 눈에 띄었던 것뿐이라고.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서 배우게 된 값진 것들도 있다. 노력 자 체가 재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글이란 쓴 사람 자체라는 것.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내연을 넓히는 사람의 글은 결국 언젠가는 드러나리라는 것. 

하여 나는 계속 쓸 것이다. 그 안에서 나를 단련시키고 내 글이 나의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내가 쓰고자 하는 글과 일치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언제나 어김없이 나를 감싸주고 단단하게 잡아주 었던 것, 그것은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덧.

초등학생들의 일기 쓰기가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 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쓰는 행위를 통해 나를 담아내 는 훈련은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존재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 로를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 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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