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안보여?
초등학교 1학년 때 ‘매직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노트 크기의 책받침에 일정한 패턴들이 자글자글하게 인쇄되어 있었는데 일정한 위치에서 눈에 힘을 빼고 이 이미지를 계속 보면 어떤 형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매직아이’를 알게 된 처음 순간부터 지금까지, 난 여전히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알기 위해 책받침을 노려본다.
그림보다 먼 곳에 초점을 맞추면 특정한 형상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원리라고 했다. 보습 학원 판촉물이었던 매직아이 책받침은 보통 등굣길에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풀린 날이면 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책받침의 이미지에 한껏 집중하는 아이, 인쇄된 이미지는 어떻든 간에 검지손가락 위에 책받침을 놓고 균형을 잡는 신체활동에 여념이 없는 아이, 이미 어떤 형상이 보인다며 자랑하는 아이까지 에너지 넘치는 90년대 초딩들은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도 다양한 역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난 ‘매직아이’ 책받침을 받을 때마다 혼란에 빠졌다. 도무지, 그리고 아무리 집중해도 내 눈에는 어떠한 형상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쉽게 이미지를 찾으면 머리가 좋은 것이라는 말도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를 보고, 안 보고는 내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갖고 있던 책받침은 침엽수림이 아주 울창한 산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균일한 나무의 형상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는 데, 돌이켜 보면 그게 나무였는지 단순히 나무 형태를 가진 픽셀 의 반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눈앞에 세워놓고 5분 동안을 째려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에게 너 는 보이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1분, 아니 3초도 안 돼서 보였는데? 넌 이게 안 보여?”
친구의 말에 갑자기 창피해졌고 나는 지는 게 싫어, 나도 보인 다, 보인다, 라고 거짓말했다. 정말 그 친구가 이미지를 봤는지 는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 물어봐도 정확하게 이 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코끼리인지 냉장고인지 양파 인지. 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중요했다. 자신의 옳음, 자신의 정의로움에 목숨 걸고 매달렸다.
성인이 될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세기말 다이어리』를 쓰면서 최근 다시 ‘매직아이’를 검색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 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구글 에 ‘매직아이’를 치고 가장 먼저 나오는 몇 장의 이미지를 노 려본다. 지긋이, 그리고 오랫동안.
역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