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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예 Jan 23. 2019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외침

우리는 나이를 따지는 문화에 잠식당했다

     “아무래도 회장은 연장자가 해야지. 조금 더 살았으니 그만큼 연륜이 더 있지 않겠어?” 


    임원 선거를 앞두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속해 있었던 조직의 역대 회장들은 모두 군대를 다녀온 연장자들이었다. 의문이 들었다. 왜 나이 많은 사람이 대표를 해야 하지?


    구성원들이 말하는 ‘연장자를 회장으로 뽑아야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경험이 더 많잖아.’, ‘회장이 어리면 나이 많은 사람들 못 휘어잡아.’, ‘지금까지 주로 연장자가 회장 하던데?’ 물론 지금까지 회장을 역임한 사람들이 모두 실력 있는 연장자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의 문제는 회장이 되기 위한 우선조건이 ‘실력’이 아닌 ‘나이’라는 데에 있다. 이 조직은 나이를 따지는 문화에 잠식당했다. 이상한 문화 같지만 이 모습은 우리 사회와 너무 많이 닮았다. 사회 속 모습과 엇비슷하지 않은가. 특히 정치권의 모습 말이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20대 국회는 역대 최고령 국회가 되었다. 평균 연령 55.5세. 유럽 국가들의 평균 연령이 50대 내외인 것을 생각하면 무려 5세나 높다. 게다가 당선 당시 31세였던 오스트리아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 37세였던 뉴질랜드 총리 제시다 아던, 39세였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처럼 젊은 정치인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해외 국회들과는 달리 우리 국회에는 30대 국회의원이 2명뿐이다. 20대는 아예 없다. 게다가 2명뿐인 30대 마저도 비례대표로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개인으로서 당선된 청년 정치인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보다 초고령 사회로 더 빨리 진입한 일본에도 30대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있다. 


    우리 국민들은 젊은 정치인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다. 이번 6.13 지방선거만 봐도 그렇다. 신지예, 이준석, 배현진 등 몇 명 되지 않는 2030세대의 젊은 청년 후보들의 기사에는 언제나 후보자의 어린 나이를 문제 삼는 조롱조의 댓글들이 많았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정치를 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서 훈계질이야.’ 이런 댓글들 속에서 후보자들의 정치적 공약, 견해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청년 정치인들의 젊은 나이를 후보의 약점으로 바라봤다. 


    물론 정보에 대한 접근이 매우 어려운 과거였다면 젊은 나이가 후보자의 약점이었을 수 있다. 옛날에는 경험이 곧 지식이고 정보였을 것인데, 오래 살수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을 테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어린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더 지혜로울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정보가 넘쳐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꼭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묻지 않아도 웬만한 것들은 직접 찾아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지식이 많거나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어리다고 해서 더 어리석지도 않다. 오히려 정보를 가려내고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찾는 능력은 어릴수록 뛰어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는 나이가 곧 지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가짜뉴스가 더 흥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지금껏 나이 많은 사람들만이 국가의 대변인이 되어왔던 것은 심각한 문제다. 


    2018년 기준 청년(2030세대) 인구 비율은 전체의 27%나 되지만 국회의원 중 청년 정치인은 국회의원 300명 중 겨우 2명뿐이다. 어떻게 이들이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도를 높여야 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등장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을 오롯이 청년들의 몫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청년들의 도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젊은 청년 정치인들은 나이를 따지는 문화에 가로막혀있다. 


    지난 국회에서는 ‘니가 뭔데!’, ‘너 몇 년생이야?’ 등의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이것이 정치권의 현실이다. 젊은 정치인들이 국회에 등장하고, 조금의 실수라도 하면 분명 많은 사람들은 그 정치인의 나이를 가지고 헐뜯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자신의 나이가 많기 때문에 청년들보다 지혜롭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금껏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표가 되어왔잖아?’, ‘대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무슨 정치야?’라는 안일하고도 위험한 생각을 버려라.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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