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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soda Feb 26. 2017

타이완 여행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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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보았지만 컨딩에서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밥을 먹었다는 글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길도 잘 모르는데 어설프게 헤매기는 싫었던 까닭에 그냥 간단하게 시저 파크 호텔이라는 리조트의 로비 라운지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까 내렸던 정류소 맞은편에서 십 분 남짓 기다리자 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시저 파크 호텔은 샤오완 정류소에서 내리면 되는데, 막상 내려보니 그곳이 아까 가오슝에서 타고 왔던 컨딩 익스프레스의 종점이자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심 먹고 바로 돌아갈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몇 대  없는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서 어디 해변을 갔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니, 실상은 그렇지도 않지만 어딘가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약간 비쌌지만 맛있는 점심.

시저 파크 호텔의 로비 라운지에서는 가벼운 안주부터 본격적인 밥 종류까지 폭넓게 취급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우육면과 새우 볶음밥을 주문했다(NT$924). 처음에 우육면이 나왔을 때에는 향신료 냄새가 과하게 나는 것 같아서 약간 불안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거슬리기는커녕 상당히 맛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앉아 있으니 창밖으로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꽤나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지, 문득 로비 쪽을 바라보니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 게 보였다. 그럼에도 정원 쪽으로 나 있는 창밖에서는 리조트 직원이 여전히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비가 내리는 날씨 정도는 그의 일에 아무런 변수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면서 똑같이 비를 맞고 있는 정원의 꽃과 풀에 끊임없이 물줄기를 뿌렸다.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쳤고, 그는 계속해서 같은 자세로 비가 지나갔다는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정원에 물을 주었다. 굵은 호스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쭉 뻗은 풀잎을 치고 지나가면 물방울이 하늘로 타다닥 튀어 올랐다. 어느새 먹구름은 몰려가고 희미하게 밝은 빛이 구름 뒤로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후 4시 차를 타고 가오슝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비 그친 하늘을 보고도 매정하게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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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에서 나가서 아까 셔틀버스를 내렸던 정류소로 돌아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서 출발하는 컨딩 익스프레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올 때 구입했던 티켓을 주고 버스에 올랐는데, 정류장에 서서 사람들을 태울 때마다 몇몇 사람들이 기사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날 선 대화에 살짝 어정쩡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버스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흘러가는 경치를 감상했는데, 굳이 힘들게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청나게 잠이 쏟아졌다. 4시 차를 타면 해안가를 타고 올라가면서 석양을 보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까마득히 잊고 한참 잠을 자다가 번쩍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유리창이 더 깨끗했다면 좋을 뻔했다.

눈을 비비며 사진만 몇 장 찍은 후에 다시 잠이 들었다가, 버스 앞에 달려 있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예정된 도착 시각이 지나 있었다. 가오슝에 들어온 뒤로 아주 조금 차가 막힌 모양이었다.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한 한자와 인터뷰를 받는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가오슝 명물 PM2.5'라는 피켓,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행진 영상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기 오염이 심각하다는 걸 호소하는 내용인 듯했다. 역시 어제부터 하늘을 뿌옇게 물들였던 것은 미세먼지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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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대로라면 저녁을 먹으러 가오슝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훠궈 레스토랑에 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쭤잉 역에 도착하고 보니 왕복 5시간에 걸친 버스 이동으로 인한 피곤함 탓에 엄청난 의욕을 발휘하여 찾아갈 정도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획을 짤 때는 한번 극복해 보자고 결심했던, 국물에 선지와 취두부가 들어있다는 점도 새삼 참을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역과 이어진 미츠코시에 있는 춘수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는데, "아까 저기서 춘수당 봤는데. 밀크티로 유명하잖아"라는 동행의 말을 듣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기 전까지는 그런 유명한 체인점이 있는 줄도 몰랐다.


5분 남짓 대기한 뒤에 곧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종이에 체크를 해서 입구에 있는 카운터에 가서 결제를 하고 번호표를 받아 돌아오면, 점원이 음식을 운반할 때마다 종이에서 지우고 다 가져오면 번호표를 가져가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타피오카 밀크티를 각각 차고 뜨거운 걸로 하나씩, 유명하다는 공부면, 메뉴에서 눈에 들어온 순간에 저도 모르게 체크를 하고 있었던 우엉 튀김, 그리고 닭튀김과 고민하다가 결국 닭 날개를 부탁했다(NT$385).

뜨거운 것도 찬 것도 맛있다.
정말 맛있던 우엉 튀김.

닭 날개는 특유의 향이 나서 먹을 만은 하지만 썩 맛있지는 않아서 사진도 안 남겼고, 면은 그럭저럭 맛있었고, 우엉 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또 발견하게 된다면 꼭 다시 사먹어겠다고 결심했지만, 나중에 다른 체인에 가보니 우엉 튀김을 안 팔더라……

밀크티는 타피오카의 크기가 작아서 먹다가 목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설탕을 줄여달라고 했는데도 달달한 것이 무척 맛있었다. 피곤할 때는 단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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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코시 백화점 지하의 sugar & spice에서 누가를 몇 종류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야경을 보며 디자인이 자가비와 엄청나게 유사한 타이완 감자 스낵을 먹으며 맥주와 콜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긴 이동은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정말 아침까지 눈도 한 번 안 뜨고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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