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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 Sep 08. 2016

내가 만난 여자 - 엄마

 짧지도 길지도 않은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쓰러지듯 잠이 들고 나면 어느샌가 아침이 되어 있다.

익숙한 온도, 따뜻한 향기, 사랑 가득한 손길로 어느새 내 곁에 가까이 와있는 한 여자.


 엄마는 항상 그렇다. 급한 목소리로 날 깨우지도, 호들갑스러운 애정표현으로 날 흔들지도 않는다.

그저 피곤해 보이는 당신의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레 손을 잡는다. 까칠하지만 따뜻한 엄마의 손에 부스스 눈을 뜬다.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뭐 그리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지. 그저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이불을 눈썹까지 끌어올리지만 이런 아침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난다.


 부족하지 않은 줄 알았던 내 어린 시절은 엄마의 낡은 옷가지들과 주름진 손등으로 인해 누릴 수 있었던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알고도 모른 척한 걸까.


 젊은 시절 엄마는 꿈이 많았고, 멋쟁이 었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눈 시린 외동딸이었음을,

사진 속 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어리고 꾸미기 좋아하는 철부지였음을 자꾸 잊는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설거지를 하다 배가 젖어도 툭툭 털고 우리에게 줄 과일을 깎는 우리 엄마는

 어느새 자식 셋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낸 원더우먼.

엄마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구닥다리라고 무시했고, 요즘 사회를 이해 못한다고 지레짐작했고,

집에만 있는 여자는 사회생활에 대해 무지할 것이라 여겼던

 20살의 나는 엄마가 결혼했던 나이가 된 오늘의 내가 되어서야 나의 오만함을 깨닫는다.


 짧고 잦은 둘째 딸의 외국 생활에 대해 무한정 지원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는 외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 걸까. 한걸음에 공항으로 달려와 두 달 만에 보는 둘째 딸을 껴안으며

'딸, 엄마 옆에서 살아. 엄마 너무 심심해.'

라는 말에 바쁘다고 전화 한번 하기 힘들어한

무심했던 딸의 마음에 미안함과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토깽이 같은 자식 셋을 줄줄이 낳느라 늘어난 엄마의 뱃살을 만지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던

예전과는 다르게 어느새 나보다 작아진 어깨가 가슴을 울린다.

우리 엄마 맨날 뚱뚱하다고 놀렸었는데, 언제 이렇게 다이어트를 했대?

장난 반 씁쓸함 반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늙으니 빠지나 봐 하고 아이처럼 웃는다.


엄마가 살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년, 매일, 매 순간마다 미뤄온 나의 효도를 엄마가 다 받을 수 있길, 오늘 아침도 짜증을 내고 후회하며

다시 기도하는 모순된 내 모습이 다시 또 밉다.


사랑이 권리의 보증수표가 아님을 다시 기억한다.

엄마가 결혼했던 나이가 된 오늘의 나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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