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K Mar 31. 2017

내가 만난 남자 - 교수님

안녕하세요, 여러분. 한 학기를 여러분과 함께 하게 돼서 정말 기대가 되네요. 

참,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편하다는 교수님. 

누구보다 학생을 사랑하고 나아가 학과까지도 아낌없이 지원하시는 보기 드문 교수님. 

학생들을 아랫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동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준비가 된 교수님.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졸업하는 순간까지 학교에서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남아 있는 교육자이자, 멘토인 한 남자. 교수님.


학교를 늦게 들어간 탓인지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서일까. 건방지게도 모든 것이 시시했다. 

바라던 대학 생활이 아니었고, 나보다 어린 선배들에게 존댓말을 하며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도 싫었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겉돌았고 학교, 도서관, 집을 반복하며 불만족스러운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하루는 교수님과의 상담이 포함되어있는 필수 전공 수업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수업이 끝났으니 바로 집에 갈 시간인데, 이게 뭐람.


커피를 마시며 상담 시간까지 거닐다 눈에 들어오는 

학교 운동장,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들, 건물 뒤편으로 지는 노을. 

멀리서 들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평화로웠다.

나는 왜 겉돌고 있는 걸까, 지금. 괜스레 우울해졌다.


자리를 털고 교수실에 들어섰다. 

우울함이 다 떨쳐지지 않은 걸까. 인자한 교수님의 눈과 마주치니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눈이 반짝이는 친구네요. 반가워요.


잊을 수 없는 교수님의 첫마디.

교수님과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나도 모르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대학 생활이 즐겁지 않아요. 

나이는 많은데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제가 가고 싶은 길을 정하지 못했어요, 불안해요.


교수님은 분명 어린 학생들의 뻔한 고민과 방황을 들어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마찬가지였을 나의 고민을 진지하고 진심으로 들어주셨다. 


남들보다 길었던 수험생활 동안 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수험 생활의 목표는 너무나도 명확했으니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우리는 모여있고 밤을 지새웠다. 

수능을 잘 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저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면 되는 삶.


결국 나는 수능에 실패했고,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갑자기 닥쳐온 대학이라는 자유의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라니. 

이때까지 생각해본 적 없는걸. 해서도 안됐는걸.

이러한 나의 방황을 나도 모르게 털어놓았고 결국 난 눈물이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괜찮아요, 다들 내 앞에선 잘 울더라고. 울어요.


특별하게 조언을 해주신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을 편하게 갖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가르치려 하지도 않으셨다.

상담이라고 하기에는 나의 고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다독여주셨다.

수많은 학생이 거쳐간 상담이지만 진심을 다해 듣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방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나는 교수님의 팬이 되었다.

대학 생활 내내 고민이 있을 때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올 때 

교수님은 항상 그 자리에서 조용한 응원을 보내주셨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러셨을 것이다. 

교수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분이시니까.


좋은 영향. 이 것은 대단한 말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상대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만난 여자 - 택시 기사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