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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 Mar 31. 2017

내가 만난 남자 - 소개팅남 1

아, 뭐 입지? 

하필 왜 코에 뾰루지가 난 거야?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부었어?

꼭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맘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다. 


마지막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게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여름방학 인턴 했을 때 좀 썸을 탔었던 것 같긴 한데... 이것도 연애로 쳐야 하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면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소개뿐이었다. 

야, 이 사람 진짜 괜찮아. 딱 너 스타일일걸?

아는 오빠, 회사 동기, 학교 선배, 성당 사람. 등등등. 

분명 남자는 많은데 왜 자꾸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건지. 

과거 실패한 소개팅이 자꾸 떠오르고 

피곤하고 어색한 순간들이 나의 마음을 닫는다. 


외롭긴 한데,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야. 

지금 나도 충분히 벅찬걸. 

나 자신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남을 어떻게 챙기겠어. 

에이, 돈 모아서 날 위해 쓰는 게 좋지, 뭐하러 연애야. 

내 쉬는 날까지 피곤하게 낯선 사람 만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 


아, 그래도 한 번은 만나볼까? 요즘 너무 심심한데. 


요즘은 단 한 번의 만남도 온갖 생각이 들고 백 번은 망설이게 된다. 

제발 소개팅 좀 해. 네가 하도 주말에 맥주 마시자고 불러대서 내 남자 친구가 불만이 많아!

나의 독수공방에 피해를 입은 친구들은 '아는 남자들' 리스트를 가지고 내 앞에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한다.


요즘 남자들은 사진도 잘 찍지. 이럴 줄 알았어. 유럽에서 찍은 전신샷을 프로필로 안 해놓은 사람이 없네.


그중에 가장 순진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회사 동기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분명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괜히 지금 해놓은 프로필 사진이 신경 쓰이고 상냥한 말투로 연락을 주고받는 내 모습이란.


다행히 만나기로 한 날은 햇볕이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다. 왠지 느낌이 좋다.

원피스는 물론, 치마도 몇 개 없는 옷장에서 그나마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옷을 고른다. 힐이 있긴 있었던가?

다행히 전날 뿌리 염색을 하면서 미용실 언니가 해준 드라이 머리가 제법 잘 살아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차가 막혔고 10분은 지각할 것 같았지만, 

그 남자도 20분은 늦을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다행이다. 그래도 내가 늦는 것보단 상대방이 늦는 게 훨씬 마음 편하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도 소개팅, 저기도 소개팅. 역시 토요일 오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야. 

전 남자 친구와 밥을 먹을 때 소개팅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끼리 키득대곤 했었는데. 

이번엔 내 차례구나. 


문득 든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땀을 흘리며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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