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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스무리 Sep 27. 2022

총성 없는 전쟁은 어디에서나 진행 중

출퇴근 전쟁의 승자는?

첨단 정보원에게서 첩보가 입수되었다. 정보원이 신참인지 눈치도 없이 크게 소리 친다. "917번 버스, 곧 전장에 도착!"


도착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아군 진지 내부에서부터 전투가 벌어진다. ㅣ전선에 먼저 있던 군인들은 재정비를 한다. 늦게 합류한 이들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분주하다. 용감무쌍한, 아니 전장의 암묵적인 룰을 깨 버린 한 군인이 진지를 떠나 전선 코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전과에 목이 마른 몇몇이 그 뒤를 따라 나가고, 그 결과 이미 한 개의 차선이 군인들로 빽빽하다. 정작 전투는 시작도 안 했는데, 전투 준비 과정에서 이미 아군 간의 신뢰는 물론 체력 또한 소진된 상태다.


가까스로 전장에 합류한 군인들은 이미 진을 치고 있던 적군의 기세에 밀려 전진하지 못한다. 이 와중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군인 한 명이 먹잇감을 포착한다. 누가 봐도 앳된 소년, 그가 앉은 자리 옆으로 모두를 무리하게 밀어내며 미친 듯이 전진한 군인은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고는 누구도 오지 못하게끔 경고하듯 무거운 표정으로, 한편으로는 새어나오는 승리의 미소를 숨기지 못하면서 우리를 돌아본다. 이 버스가 직업 군인들이 많은 지역을 지나간다는 정보가 이미 전해진 만큼, 그 군인의 선택을 일견 날카로워 보인다.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이들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들리고, 그들의 주먹은 굳게 쥐어진 상태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치고 있다.


그렇게 전장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으나, 너무 많은 군인들이 한 전장에 있다 보니 모두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 "이번 역은 정부과천청사입니다. 전장을 빠져나갈 군인들은 내리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전장에 울려퍼지고, 꽤나 많은 수의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한다. 운 좋게 그 옆쪽에 진을 치고 있던 군인들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자리에 착석, 달콤한 승리의 맛을 음미한다.


그 뒤로 주요 진지들을 지나며 많은 수의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게 되고, 빈 자리는 여지 없이 새로운 군인들로 메워진다. 아, 아까 제일 먼저 만만한 소년을 상대로 삼았던 그 군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의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고, 이번엔 그의 굳게 말린 주먹이 허벅지에 서너 차례 충격을 일으킨다. 아마도 주요 진지에서조차 전장을 이탈하지 않는 소년을 보며,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아군을 저버린 그 군인이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그 소년의 학교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국 전쟁은 끝이 나고 모두가 결국은 자리에 앉아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참전 용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전쟁은 내일 아침에 다시 발발할 것이며, 심지어 매일 아침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매일 출근 전쟁을 하는 모든 분들, 특히 경기도민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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