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걱정'

걱정에 관한 첫 번째 생각 나눔

한국인, 한국 문화를 한 글자로 표현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글자는 아마 '정'이 아닐까 싶다. 이 글자로부터 한국만의 특이한 문화가 사랑 받기도 하고 (예를 들면 '이모 반찬 좀 더 주세요!', '에이 하나는 정이 없지! 두 개 줄게~'), 이 한 글자때문에 학연, 지연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사회적 부패, 도덕적 해이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당차게 선언(?)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걱정 어린 조언 및 충고를 해주셨다. 분에 차고 넘치는 걱정을 받아 먹기만 하여 원래 불렀던 배가 더 부풀 때 쯤, 문득 걱정이란 단어의 어원과 유래가 궁금해졌다. '정'이라는 단어와 연관성이 있지는 않을까? 정-걱정. 고작 한 글자, 획으로 쳐도 네 획 차이인데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른 두 단어가 연관성이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데스크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정은 한자어 情이 있지만, 걱정은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걱정의 어원을 궁금해 하는 다른 분이 국립국어원 트위터에 이에 대해 문의한 결과가 있어 몰래 들여다보니, 걱정이라는 단어는 오래 전부터 쓰였으나 정확한 어원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감히 추측해보건데, 걱정은 '거꾸로 정'의 줄임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반적인 情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어질 경우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되는 반면에, 걱정은 온전히 '걱정하는 주체'만 만족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즉, '정'이 향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걱정'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냉정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모두가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걱정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하지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걱정'의 의미는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보인다:

1)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
2)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
3) 마음을 써서 보살피거나 수고하는 일 (북한어)

놀랍게도 걱정이라는 단어의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심지어 우리가 보통 '걱정'이라는 단어의 뜻으로 생각하는 3번 의미의 경우 북한어이다! (북한어도 한국어로 봐야 하겠지만 굳이 구분한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보통의 경우 사람들이 자기 자신보다 남에 대한 걱정을 즐겨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우리는 남을 걱정하는 행위를 통해 나의 기쁨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상대방을 걱정하면서 자신은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음에 무의식적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감사함이 오롯이 나만을 향한 情으로 돌아오는 것. 그래서 선조들께서 '거꾸로 정 - 걱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독일어에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하기에 공유한다. '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인데, 이 단어의 경우 '안타까움, 손해'를 의미하는 Schaden과 '기쁨, 행복함'을 의미하는 Freude의 결합어이다. 이 단어는 심리학 용어로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남이 실패하고 불행해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어려움이 오히려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모순적인 독일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걱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을 걱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동정심과 연민하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지극히 자연스런 행위이다. 하지만 그 걱정이 온전히 '타인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걱정에 대한 또다른 생각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