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들의 MBTI 분포는 어떨까?
오늘은 번외로 저의 부캐가 아닌 본캐(개발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정식으로 MBTI 검사를 받았던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MBTI 결과는 늘 변함없이 INFP였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즉흥성과 융통성을 대변하는 P의 성향이 매번 만점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삶에 당최 계획이라는 게 없이 벼락치기와 임기응변으로 점철된 캐릭터인데요, 그런 성향을 가진 인간이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가서 지금은 제조업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하고 있으니 상황만 보면 참 어울리지 않은 조합 같습니다.
대학생 시절 자유분방하고 규칙적이지 못한 성격과 생활 탓에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꼽으면 늘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제가 어느덧 한 회사에서 13년을 근무하고 있다니, 지인들도 그렇지만 제 자신도 놀랄만한 일입니다.
개발자로서 F성향이 강한 것 또한 그리 어울리지는 않아 보이지만 극단적인 P성향은 특히나 제조업 회사에 다니는 개발자로서 치명적입니다. 제조업 개발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몇 개 꼽으라면
"꼼꼼하게, 차근차근, 일정과 계획, 절차를 준수하는, 표준에 따르는..."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만 위의 항목 모두 J성향에 가까운 모습이지, 극단적 P 성향의 저에겐 부족하다 못해 치명적인 결함에 해당하는 덕목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안 잘리고 잘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하네요.) 어쩌면 본캐인 개발자로서 풀지 못하는 P성향을 분출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더더욱 음악이라는 취미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허나 음악활동 역시 무계획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으며 다분히 즉흥적인 점을 보면 사람 성향은 어디 가질 않나 봅니다.
학생 때부터 호환마마보다 무서웠던 존재가 바로 ESTJ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공대 출신들이 대부분인 회사 특성상 직장에서는 프로젝트를 리딩 하는 분들 및 사수로 만난 분들이 TJ성향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FP성향의 저와 정반대 성향을 가진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저는 뭔가 정해진 틀에 구속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참 힘들었습니다. (물론 상대 TJ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계획적이지 않으며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저로 인해 화병이 100번은 나셨겠지요. 이 점은 지금도 참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개발자들 중 가장 많은 MBTI유형은 무엇일까요? 이 글을 쓰면서 실제로 개발자들의 MBTI 분포는 어떨까 궁금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결과가 매우 놀랍습니다.
2020년에 프로그래머스 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자의 가장 흔한 MBTI유형은 INTP(12.4%), INFP(11.0%), INTJ(8.7%)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저의 유형 INFP는 개발자로서 2번째로 흔한 유형이었던 겁니다. 순위를 더 살펴보니 가장 많을 것으로 보였던 TJ성향의 개발자가 의외로 많지 않네요.(3,7,10,12위)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유형인 ESTJ는 그중에서도 꼴찌인 12위라는 사실이 몹시 충격적입니다.
결국 선입견과 달리 저는 개발자라는 본캐로 살기에 적절한 부류의 인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천상 타고난 팔자가 개발자 였나 봐요. 프로그래머스 커리어에 정의된 INFP 개발자의 정의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네요. 마치 제 상황을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듯합니다.
INFP - 열정적인 중재자
진정한 이상주의자. 버그가 난무하는 최악의 상황도 긍정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함.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개복치와 같은 멘탈의 소유자.
- 출처 : 프로그래머스 커리어
이번 글을 쓰면서 '나의 개복치 같은 멘탈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라는 위로와 함께 허튼 생각하지 말고 본캐로 오래오래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