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가 내 인생 첫 악기가 되기까지
욕망의 진화 시리즈에서는 "악기 하나만 다룰 수 있다면"으로 시작한 욕망이 진화하고 진화해 결국 "원맨 밴드로 음반을 발매해 봤으면"의 욕망에 까지 이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저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 처음엔 그저 "기타로 G코드로 시작하는 간단한 노래 끝까지 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정도의 욕심이었거든요.
한 때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이 화자 된 적이 있었습니다. 1. 외국어 하나 정도는 구사하고 2. 스포츠, 음악에서 한 가지 이상의 종목이나 악기를 다루고 3. 자신만의 요리 하나 정도 만들 수 있고 … 중산층의 정의가 부의 축적이 기준이 아닌 각 개인의 사회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무엇보다 제게는 “중산층이 되려면 악기 하나쯤은 다뤄야 한다”는 조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프랑스의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뭔가 악기 하나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통기타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주위에서 구경할 수 있는 악기는 피아노와 기타가 전부였는데, 피아노는 좀처럼 재능이 없어 포기했던 전적이 있어서 남은 선택지는 기타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기타를 포함한 악기를 가르쳐주는 실용음악학원 같은 곳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교회가 음악과 예술 등의 신문물을 접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것도 무료로!!) 그래서 개인적인 신앙심과는 관계없이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도 빈 공간을 전전하며 교회 기타를 가지고 실컷 연습도 하고 청년부 형님 누님들이 찬양팀 밴드 연습을 구경하면서 틈틈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귀찮게 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런 저를 귀찮아하지 않고 가르쳐 주던 형들이 참 자비로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공이나 입시 준비가 아닌 취미로서 기타를 처음 배우는 이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부류로 나뉩니다.
노래 부를 때 반주를 위해(통기타 - 반주)
사람들 앞에서 유명한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클래식 기타 - 연주)
밴드에서 주목받는 멋진 솔로를 하고 싶어서(일렉 기타 - 솔로)
드물게는 아래와 같은 경우도 존재합니다.
정성하 같은 핑거스타일로 버스킹을 하고 싶다(통기타 - 연주)
Jazzy 한 즉흥 연주를 하고 싶다(할로우바디 기타 - Jazz)
이 중에서 저는 맨 처음 항목에 해당했고 두꺼운 노란 종이로 된 을지악보나 최신가요 악보집에 있는 노래들을 대충이라도 치면서 부를 수 있는 날을 꿈 꾸며 기타를 연습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롤모델이 있을 텐데요, 저에게는 유독 두 명의 기타 연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빨간 머리를 하고 일렉기타를 치며 당시 충격적인 보컬을 선보인 "필승"을 부르던 서태지의 연주와, 1997년 N.EX.T의 라이브 실황 앨범 The First Fan Service - R. U. READY? 에서 보컬과 함께 선보인 헤드리스 기타(스타인버거)로 배킹을 했던 신해철의 연주였습니다. 어쩌면 화려한 기타 솔로 연주보다도 보컬들이 backing 기타로 혹은 second guitar로 연주하는 모습이 오히려 저에겐 리드기타보다 가슴 깊이 와닿았는데요, 이때부터 뭔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