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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록원 Jun 21. 2019

낙원의 빛이 드는 지옥에서

영화 <갤버스턴> 리뷰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스포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스포 아주 多多多多)



올해 본 영화 중에 손에 꼽히는 영화였다. 줄거리의 행복도를 떠나 내 뇌리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을 듯한 영화다. 영화 <갤버스턴>은 확실히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다 본 후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은 "잘 만들었다"였으나, 이 영화를 리뷰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이 처절함과 씁쓸한 여운을 글로 풀어내기가 두려웠다. 그렇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처절하다"였다.



영화는 시작부터 말 그대로 폭풍이 휘몰아친다. 바깥에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듯 거센 바람소리가 들리고 어두운 집안 풍경을 천천히 보여주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돌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 청부업자 일을 하는 40살의 중년 남성 '로이'와, 19살의 소녀 '록키'다. 주인공 설정을 보며 설마 서로 의지할 데 없는 중년 남성과 성인 언저리의 어린 여자와의 애매한 로맨스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잠시 휩싸였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그렇고 그런 '로맨스'로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는 정확히는 '로이'의 시점으로 진행되나, 사실 로이보다도 그의 시선이 향해있는 '록키'란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더 많이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록키는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앳된 얼굴만큼이나 노련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하다. 얕은 바람에도 흔들려 버릴 것 같은 불안한 인물. 인생도 기구하다. 어머니는 없고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해 딸을 낳게 된다. 제대로 살고 싶다며, 정확히는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며 도망치듯 집에서 나왔음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록키가 돈을 벌기 위해 발을 들인 수단은 끔찍하게도 트라우마로 가득했을 자신의 몸과 '성'이었다.


엘르 패닝이 연기한 '록키'


영화 초반부에 어쩌다 실수로 잘못된 세계에 발을 들인 소녀 같던 록키가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며 로이에게 추근덕대며 유혹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다시 덜덜 떨며 숨죽여 흐느낀다. 록키에게 살아남기 위한 가면은 그런 것들이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유일한 가면.


록키가 로이에게 처음으로 완전하게 자신을 보여줬을 때는 영화가 한참이나 진행된 후인, 여동생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딸이었던 티파니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해 감정을 토해내며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해당 장면



로이 역시 만만치 않은 인생사를 가지고 있다. 밑바닥 인생을 살다, 범죄조직에 몸담았고, 결국 쫓기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폐암까지 걸렸다. 죽음을 앞뒀다는 사실에 힘들어하지만 아무도 그의 안위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영화에서 폭풍 같은 삶을 살아가는 록키와 로이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연다. 표면적으로는 록키와 티파니가 로이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관계 같아 보이지만, 로이에게도 록키와 티파니는 중요한 존재다. 그들이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꿈이나 미래도 없이 그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사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기대고 의지할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매일 누리고 사는, 그냥 사람 사이의 소통, 관계, 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그들이 잠깐이나마 미래와 희망을 꿈꾸는 곳이 영화의 제목이자 지명인 '갤버스턴'이다. 그곳에서 로이는 자신을 쫒는 조직 보스를 협박해 돈을 받아, 그 돈으로 록키와 티파니를 도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폐암 때문에 심란해져 자신을 진찰한 의사에게 전화로 행패를 부린 것 때문에 꼬리를 밟혀 결국 그들은 보스에게 잡히게 되고 비극을 맞게 된다. 록키는 강간과 살인을 당하고, 로이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티파니와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게 보스의 죄를 덮고 형량을 다 살고 나온 로이에게 티파니가 찾아온다. 스스로 버려졌다고 알고 있는 티파니는 록키가 그토록 꿈꾸던 '보통의 삶'을 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티파니에게 로이는 그저 "록키는 너의 언니가 아니라 너의 엄마고, 그녀는 너를 지키기 위해 정말 노력했어. 넌 버려지지 않았어"라는 말만 한다.


어른이 된 티파니


로이는 록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록키에게 "너는 아직 미래가 있고, 너의 삶은 바뀔 수 있다"라는 식의 희망찬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작 그들이 바라던 것들은 처참히 짓밟히고, 오히려 그들의 곁에서 멀어진 티파니가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로이는 티파니에게 폭풍이 오니 나를 남겨두고 떠나란 말을 한다. 언제 어디서나 너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 다시는 나와 엮이지 말란 듯한 뉘앙스로 말이다.


 




영화 <갤버스턴>은 정말 처절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영화의 시작과 끝은 수미상관 구조로 똑같이 폭풍이 휘몰아친다. 영화에서 보여준 모든 여정이 지나갔음에도 그들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폭풍이 휘몰아칠 뿐이다.


꿈을 꿀 생각도 하지 않는 현실, 그럼에도 잠깐 희망을 보고 꿈꾸지만 그것마저 처참하게 짓밟히는 삶. 로이와 록키는 한순간도 온전하게 낙원에 있던 적이 없다. 낙원을 꿈꿨을 뿐이다. 갤버스턴은 낙원이 아니라 낙원의 빛이 드는 지옥이다. 그 빛을 보며 낙원에 와있는 듯 하지만 결국 지옥 안에 있는, 저 빛이 있는 낙원으로 나아갈 꿈을 꾸지만 끝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곳.


씁쓸하고 어딘가 불편한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였다. 여담이지만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필자 같은) 사람들의 경우엔 심적으로 좀 힘든 영화일 수 있다. 별개로 숨 쉴 수 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만큼이나 밀도 높은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쓴맛 나는 여운을 진하게 만든다.


특히 록키가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장면에서의 엘르 패닝의 연기는 정말 인상 깊었다. 상처나 트라우마에 대해 말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저 내가 겪은 사실과 경험을 '말하려 하는 것' 뿐임에도 말보다 감정이 먼저 터져 나와버린다. 눈물과 불규칙해진 호흡 때문에 말을 이어나가기도 힘들다. 이런 감정을 토해내듯 표현해냈다. 연기하면서 심적으로 힘든 캐릭터였을 텐데 영화 속 그녀의 연기는 대단했다.


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마지막까지 록키는 이렇게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로이가 죽음을 모면하고 발견한 록키의 시신은 나체 인체로 테이블에 엎어져 눈을 뜨고 있었다. 직접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능한 장면이었다.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자신의 성을 팔아 생존해야 했던 록키였는데, 너무 일찍 모진 세상만을 겪은 아직 어린 이 소녀의 죽음까지도 이렇게 비참하게 표현했어야 했나라는 미련이 자꾸만 든다.


끝으로 이 영화를 너무 잘 표현했다고 느껴지는 원어 포스터의 구절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치겠다.



NO PAST. NO FUTURE.
NOTHING TO 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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