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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아니 계속해서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질문은 살아가다 문득, 어떤 시기에는 유독 자주,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다. 딱히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추상적인 질문이어서 이거다! 하며 땅땅땅하고 끝내버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질문에 우리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위 질문들의 주어는 하나같이 '나'이다. 나는 언제나 나였는데, 왜 나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답하기 힘든 걸까. 단순하지만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해 쉽게 대답할 수 없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모르기 때문 아닐까.
시대가 변하면서 세상은 이제 '내가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사회보다 개인에 집중하고, '주체성',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베스트셀러의 제목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주체적인 삶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은 우리가 모르는 '나를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것도 '그림'을 통해서 말이다.
책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그림으로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소개하기 앞서, '그림'에 대한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 봐야 할 듯하다. 우리 대부분은 '그림'을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림'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 조금 다르다.
언어라는 수단으로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정돈하고 표현하는 것처럼, 그림 역시 그런 수단으로 여긴다. 나와 동떨어진 - 예술가들만이 해낼 수 있는 - '작품'으로서의 그림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나의 표현법이자 수단으로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그림은 이렇게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기준으로 나뉘는 그림이 아니라, 그저 그려내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그림이라는 방법을 표현 수단으로 삼았을 때의 장점은 언어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자주 잊지만, 언어는 꽤나 한정적이다. 한 번쯤 어떤 감정이 마음에 휘몰아쳤을 때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아 말로 표현이 안돼."
그리고 우리가 자주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의 내면은 언어보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무언가'에 가깝다. 그림은 그걸 표현해내기에 좋다.
가령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말로 하라 하면 대부분 비슷한 단어를 댈 것이다. 짜증, 분노, 우울, 불안함, 조바심. 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했을 때에는 다르다. 언어에 기댈 수가 없다. 우리는 색과 선과 면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표현된 '이미지'로 존재하는 그림에 담겨있는 감정은 '이해'가 아닌 '느낌'으로 전달된다. 모호하기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구체적이지 않기에 더 직접적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의 그림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같은 '우울'이라는 감정을 누군가는 새까맣게 도화지를 채우고, 누군가는 선으로 채우고, 누군가를 파랑으로, 누군가는 회색으로 채울 것이다. 언어라는 통제에서 벗어난 그림은 이렇게 자유롭다.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담긴다.
책은 집요하게 나의 내면에 집중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기하게 어느새 나도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대본처럼 '김'과 '홍'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실한 8년 차 직장인이자 어느 날 이유를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온 '홍'이 '김'을(책의 저자이다.) 찾아가 그림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게 되는 과정이 내용이다.
책에 나오는 그들의 그림 여정은 아주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낙서-선-회오리를 그리는 것부터 사물-인물-공간과 그리는 것까지. 언뜻 보면 '그림을 배우는 것' 같지만 이들의 그림 여정이 여느 그림 수업과 다른 이유는 그 과정과 목적에 있다. 처음부터 그리는 '기술' 대신,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는 법을 연습한다. 그림에 생각을 담는 것 대신, 느낌과 감정을 담는 연습을 한다.
처음에 색과 선으로 시작한 이 연습은 사물, 자화상, 인물, 공간, 풍경으로 확대되는 그리는 대상에 따라 더 깊어지고 확장된다. 내가 마음이 가는 대로 대상을 그리는 연습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된다. 어떤 것을 내가 더 주의 깊게 보는지, 어떤 것을 잘 보지 않는지.
글로 쓰니 복잡한데 이런 것이다. 지금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라 하면, 그리고 나의 감정이 우울이라 하면, "우울은 검정을 써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이전에 동요하는 느낌을 따라 선택하고 마찬가지로 느낌을 따라 표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 마음이 가는 색이 분홍일 수도, 파랑일 수도 있겠다.
대상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닮게,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바라보며 마음이 가는 부분을 무작정 그리기 시작한다. 자화상이라 하면 내 얼굴 중 가장 자세히 보는 부분, 그 순간 마음이 가는 부분을 그린다. 다 그리고 또 그리고 싶으면 또 그 위에 덧 그린다. 그림의 완성도 오롯이 내가 정한다. 답도 없고 평가도 없고 생각을 배제하고 그저 나의 느낌과 마음만 따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렇게 그림 그리는 것으로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그림이 나를 찾는 것에 의미 있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추릴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느낌과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는 생각보다 아주 직접적이고 강하게 내가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느낌과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 자라오면서, 살아가면서 온전히 느낌과 감정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간혹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 조차도, '생각'을 하지 '느낌'을 들여다보진 않는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다 해서 느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받아들이며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생각 이전에 '느낌'이 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하지만 단순하고 강력한.
이것은 '생각, 편견, 환경, 사회, 관계'등 모든 게 개입되기 이전에 온전히 나에게서 나온 것이어서,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보다 온전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느낌과 감정에 집중하는 연습은 신기하게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연습이 된다.
두 번째는 그렇게 생각과 이성을 배제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는 '과정'과 완성된 '그림'에서, '나'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그 흔적으로 나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왜곡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하지 않거든.
내가 세상을 왜곡한다는 사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모두가 왜곡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어떤 것을 왜곡하는지 모른다는 점이 포인트다. 그림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여준다. 위의 표현처럼 내가 세상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내가 나의 어느 부분을 외면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자화상 같은 경우에도, 자화상을 그리며 내 얼굴의 어떤 부분을 마음에 들어하고 어떤 부분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부분은 많이 고치고, 그리기 싫어한다. 마음이 가는 부분은 손이 먼저 간다. 자신 있게 그린다.
내 감정을 표현한 그림을 볼 때도 '나'를 알 수 있다. "내가 생각보다 더 마음이 복잡하구나", 내지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같은 것들이 바로 전달된다.
생각을 없애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에는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가 더 많이 담긴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을 보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혹은 내가 외면하고 있는 나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거슬러서 발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나'에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서 나오는 그림 그리기는 '나'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나의 감정, 나의 느낌,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끊임없이 들여다보게 한다.
매번 노력하지 않아도 하루에도 수천번 수만 번 매 순간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는데도, 우리는 그 과정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림 속에 담긴 나를 들여다보면,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들이 보인다. 내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나 자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보인다. 이 책은 '그림'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나의 마음이 어떤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책에는 이들의 여정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직접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각 챕터마다 있다. "이렇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나'를 찾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경험은 이해보다 한 차원 깊은 인상을 준다.
사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간단하게 적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글을 남기는 건 이 책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그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주체성과 자존감에 고민이 많은 사람, 나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 내가 나를 모르겠는 사람. 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진심을 다해 추천한다.
"세상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있다는 느낌'이야. 계속 일깨우는 거야.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사랑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쓴다는 느낌을 계속 일깨우는 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매 순간 무엇인가를 향해 달아나. 해야 하는 일, 갖고 싶은 것, 좋아 보이는 것들을 향해. 그러니 일깨우는 거야. 나 자신을 가능하면 자주. 혼란스럽다가 다시 찾고, 혼란스럽다가 다시 찾고, 그게 삶이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세상이 조금씩 더 넓어지고 나의 몸짓은 자연스러워지고, 세상과 더 잘 어울려 살 수 있어지지."
writer 심록원
아트렉처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