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찌랭이, 고어개복치, 나를 일컫는 다른 말들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나는! 즐기려고! 콘텐츠를 본다. 사회를 향해 던지는 무거운 메시지... 어두운 현실을 비꼬는 블랙코미디... 대놓고 찝찝에서 시작해 찝찝으로 끝나는 폭력적인 한국형 마초 깡패 누아르... 고어.. 좀비.. 공포.. 힘들다. 많이 힘들다. 이전에 문화예술 에디터와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 활동을 하며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생겼는데, (상업성이 없는 독립영화들이나 예술에 가까운 영화들을 많이 봤었고 우리네 삶이 그렇듯 어두운 면을 다룬 영화가 많았다.) 그때 확신이 들었다. "아, 나는 이걸 업으로는 못 삼겠구나..." 하고.
날 때부터 공감 요정, 좋게 말하면 공감 요정이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과몰입에 다른 사람의 감정이 쉽게 흘러들어와 내 감정이 되어버리는 나는 영화 속 상황과 캐릭터들에게도 과몰입을 심하게 한다. 공포영화를 보면 스릴만 즐기는 게 아니라 최소 1주일 동안 그 상황에 내가 있는 게 상상이 돼서 골골거린다. 성인이 되어서 공포 역치가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호러 찌랭이인 건 마찬가지. 그런 와중에 취향이 꽤나 뚜렷한 편인 데다가 영화 완성도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서 꽂히는 영화를 발견하면 정말 감격하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한 인간. 그게 바로 접니다!
내 취향의 영화는 자연스럽게도, 완성도 높고 유치하지 않지만 귀엽기까지 한 애니메이션 (픽사, 디즈니), 영감과 감동을 주는 힐링 드라마 류 영화, 기왕이면 일상적인 것들 그 속에서 따스한 울림을 주는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들, 기본 베이스는 앞서 말한 분위기와 똑같으나 여기에 다른 장르적 재미가 가미된 영화들 (스릴러 한 스푼, 판타지 한 스푼, 신선함 한 스푼, 잔인하지 않은 액션 등등), 가장 중요한- 연기! 스토리! 참신함! 깊은 여운과 감동! 이 모든 게 균형 있게 버무려진 완성도 높은 영화이다.
네이버 블로그팀에서 주관하는 '영화를 말하다' 챌린지가 있길래 신청한 기념으로, 취향 타는 나의 인생영화 리스트를 적어보기로 했다.
정말 나의 인생영화를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말하는 영화. 이 영화를 보면 갑자기 가방을 싸 무작정 세계여행을 떠나고픈 마음이 들게 하고,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나간 것과 새로운 것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리고, 행복과 설렘 그리고 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메시지를 멋없게 "자! 생각해봐!"라고 던져주는 게 아니라 정말 세련되게-쉽게-편하게 윌터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월터의 이야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월터로부터 삶의 영감을 얻게 되는 영화.
아직도 좋아하는 문장이 바로 이 영화에서 나온다. 라이프 잡지사의 슬로건이었던 문구. 폐간되는 종이 잡지 라이프의 사진담당이었던 월터라는 캐릭터 배경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문장이다. 월터가 떠나는 과정에서 노래와 함께 화면에서 이 문장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명장면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 냄새나는 영화, 따스한 울림을 주는 영화이고, 진짜 마지막 엔딩까지 감동과 여운 좔좔좔... 진짜 완성도 높은 영화다.
아, 그리고 이 영화 보면 롱보드 배우고 싶어 진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장면 중 하나가 롱보드 타는 장면.
↓해당 명장면
진짜 감명 깊게 봐서 따로 리뷰도 적었었다.
자세한 리뷰는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하세요. 아래 리뷰 포스팅은 스포가 많기에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https://blog.naver.com/min_hee225/222626856079
월터가 감동과 여운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였다면, 인셉션은 "진짜 감독 천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 디테일... 정말 디테일 변태.. 천재.. 천재 디테일 변태.. 이 정도로 스토리와 설정 연결을 디테일하게 쪼개면서도 다 아아아 아 연결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분석하기 좋아하는 INTJ는 가슴이 웅장 해지는 영화. 14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 조금 넘는 상영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났었다.
메멘토나 테넷처럼 놀란 감독 특유의 시간이나 현실에 대한 독특한 시선과 영화 구성 방식이 돋보이는데, 인셉션 역시 조각조각 쪼개 놓고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속도감과 긴장감과 몰입감과 쾌감이 엄청나다. 솔직히 메멘토, 테넷도 봤지만, 인셉션이 최고시다. 메멘토는 너무 어둡고, 테넷은 약간 모호하다. 아무리 봐도 놀란감독은 천재변태가 맞다. 맞아.. 그게 아니면 이게 가능할 수가 없어.
상업성이 있으면서 스토리까지 탄탄한 완성도 높은 영화가 희귀한 이유는 말 그대로 '어렵기' 때문이다. 길어봤자 2시간 정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액션이나 볼거리까지 주는 게 당연히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그걸 시도하다 용두사미 꼴 나는 영화 정말 수두룩 빽빽이고, 상업성이면 상업성(볼거리와 재미), 메시지면 메시지, 장르면 장르, 한 가지만 잘해도 좋은 영화라고 평가되는데, 이건 그걸 다한 영화. 나는 이걸 천재 감독이 부와 명성을 가졌을 때 만들 수 있는 영화라 부르기로 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스토리 완성도를 이 정도로 끌고 가면서, 액션까지 빠방 해서 볼거리도 많은데 그래서 상업성도 풀 충전인데, 이렇게 완벽한 영화가 가능하다고????"란 생각에 가히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예모르 델 토로 감독은 크리처 덕후로 유명한 감독인데 (본인만의 크리처 소품 박물관까지 소장한 그는 진성 덕후..) , 그 감독이 마니아층의 심장을 저격하면서도 비 마니아층의 마음까지 저격한 영화가 셰이프 오브 워터. 소재와 별도로 영화 전반의 분위기가 참 동화 같고 서정적이다. 뭐랄까. 차가운데 사랑스러워.. 뭔가 불안한데 몽글 거려.. 부제가 '사랑의 모양'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감정은 '사랑'이다. 약간 어둡고 차갑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사랑. 조금은 몽환적이고 오묘한 사랑.
워낙 유명 감독이라 꼭 크리처가 등장하는 영화만 만들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 참여하긴 했지만, 전작 중 그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영화가 바로 '판의 미로'와 '퍼시픽 림'. (저는 잔인해 보여서 안 봤습니다) 팀 버튼과 비슷한 듯 다르다. 나의 취향과 상반돼서 사실 이 감독의 취향이 담뿍 담긴 영화들은 포기했는데, 쉐이프 오브 워터는 진짜 잘 만든 영화이고 내가 볼 수가 있는 영화였다!!!
여자 주인공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설정해 매력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도 잘 버무려져 있다. (부담스럽고 힘들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다룬다.) 차갑고 어두운 영상톤에, 크리쳐와, 권력과 폭력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는데 영화가 부드럽다. 이게 가능한가? 이 영화는 그게 된다. 내가 볼 수 있다는 소리는 고어한 장면이 적거나 거의 없다는 소리. 나와 같은 호러 찌랭이 분들이라면 새로운 신선함과 장르적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으니 추천한다.
이 영화를 주제로 한 칼럼 중에 좋은 글이 있는데 아래에 첨부! (이승한 칼럼니스트님 팬입니다!)
https://blog.naver.com/cine_play/222745659027
정말 띵오브띵오브띵작. 인생영화 뭐니? 하면 나오는 TOP3가 월터, 인셉션,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월-E 다. 정말 정말 정말 섬세하다. 정말로 섬세한데 영화가 참 쉽다. 내 기준 애니메이션 중에 최고. 일종의 작품같이 느껴질 정도로, 예술성- 있어!, 재미- 있어!, 감동- 있어!, 그런데 뻔함- 없어!, 여운- 있어! 영화.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진짜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웰메이드란 이런 것! 애니메이션이란 이런 것!"이라며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떵떵거리며 다녀도 아니꼬움은커녕 예이~~~ 당연합죠~~~ 할 정도의 감동이었다. (비유적 표현입니다)
일단 월-E는 아카데미도 휩쓸고, 골든 글로브도 휩쓴,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왜 이렇게 상을 많이 받았는지 납득이 간다.
영화 완성도도 완성도인데, 참 대단한 게 영화에 '언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행동과 상황 그리고 로봇음 정도의 기계음톤으로만 감정을 표현하고, 캐릭터는 무려 사람과는 거리가 먼 로봇에 (얼굴 표정도 잘 안 읽힌다.), 배경은 '우주'인, 나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상황 설정과 주인공들에도 불구하고, 말로 할 때보다 더 섬세하게 캐릭터의 감정에 공명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애니메이션 장편을 대보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월-E'다.
픽사 특유의 여러 가지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스토리 라인이 동시 진행되는데, 기승전결이 뚜렷한 단순한 구조의 애니메이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감에도 불구하고, 진부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정말 좋은 영화다. 그냥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력추천. 몽글몽글 힐링하고픈 사람에게 추천. 그냥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추천.
이것도 너무 좋았어서 따로 리뷰를 적었었다.
역시 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안 본 사람은 클릭하지 않기를 추천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이야기가 흘러들어오는 경험을 놓치지 마세요!
https://blog.naver.com/min_hee225/22262686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