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재 Apr 21. 2018

중년의 커피뽑기 72

왜? 사냐고 묻거든 “소공녀”

어릴적 우리집에는 읽지도 않는 세계문학전집과 위인전집이 떡하니 책장에 꽂혀 있었습니다. 뭐 위협용인지 아님 70년대 초 집집마다 전집들 꽂아두고 전시하는게 유행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중에 몇몇의 작품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바다밑 2만리” 맞나? 기억이 가물 가물

“허클 베리핀의 모험” “소공녀” “소공자”

“삼총사” 요런 것들이 내 취향을 저격해 그 많은 책들 가운데 간택을 받았었죠.

그중 소공녀란 작품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작품으로 뭐랄까 한 순간에 인생의 바닦을 쳤지만 긍정적인 마음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시 신분을 회복하게 되는 다소 뻔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상영한 소공녀란 제목의 영화는 주인공이 가난 하단것 빼고는 고전 소공녀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 아 중퇴한 이유는 가르쳐 주는 것도 더럽게 없으면서 쓸데없이 등록금만 비싼 이유로 대학을 그만두고 변두리 월세방을 전전하며 가사 도우미를 합니다. 거기다 부모도 없는 고아에 남자친구도

공장기숙사에서 살며 대학학자금대출 갚느라 제대로된 데이트도 한번 못하는 자칭 거지입니다. 영화 티켓을 얻기 위해 헌혈을 하지만 남친은 웹툰 작가의 꿈을 포기 하지 않는 꿈돌이 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 하게도 주인공의 이름이 “미소”입니다. 이 울어도 시원찮을 상황에 주인공 미소는 절대 포기 못하는 몇가지 있습니다. 담배와 위스키 남자친구 그리고 선천적으로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는것을 막아주는 한약입니다.


한 주에 몇번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받은돈으로 월세와 약값 담배값 위스키 한잔을 마시기엔 너무 부족 합니다.

남의집 청소를 하는 주제에 담배를 피우고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미소에게 이것들은 삶을 지탱해주는 위로이며 버팀목인지 모릅니다.

모든 물가가 다 오르는 때 월세도 오르고 담배값 술값도 오릅니다.

세상에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집니다. 과감히 월세집을 탈출해 가방에 이삿짐을 담고 예전 함께 음악을 했던 동료들의 집을 방문합니다. 보컬. 드럼. 건반. 베이스기타. 어떤 친구는 미소의 방문을 염치 없거나 부담스러워하고 또 어떤친구는 사심을 품고 대하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들을 방문 할 때 미소의 손에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며 계란 한판의 숫자인 30의 (주인공 미소의 나이가 30쯤) 상징적 의미인지 꼭 계란 한판이 들려 있습니다.


이제 각자의 삶이 생긴 친구들은 더 이상 예전의 친구가 아닙니다.

집없이 떠돌아 다니지만 오히려 가정과 집이 있는 친구들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대하고 위로 합니다.  시댁살이에 고단한 친구를 위해선 몰래 반찬을 만들어주고 이혼의 아픔으로 힘들어 하는 후배에겐 헌혈후 받은 초코파이를 전달하며 가슴 따뜻한 위로를 전합니다,


가난하지만 함께 꿈을 키웠던 남자친구는

집없이 떠돌아 다니는 여친 미소를 보며

 꿈이 밥먹여 주지 않는다며 돈을 벌기위해  외국으로 떠나 버립니다. 그런 남자친구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스케치노트를 선물 합니다.


미소를 만난 친구들은 집도 없어 떠돌아 다니며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는 미소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소는 그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친구들에게 비난을 받지만 미소는 오히려 삶의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영화를 볼때는 참 재미 있는데 보고난 후 뭘 봤는지 모르는 영화가 있고

볼 때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아니 꿈꾸기를 포기 했는지 모릅니다. 전국민이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는 기현상속에서 미소는 분명 이상하고 한심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고 정죄 할 자격이 있을까요?


미소는 어쩌면 철부지 일지 아직 현실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인공 미소는 자기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난도질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슨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미소는 훨씬 훌륭합니다.

취직도 어렵고 살기가 점점 어려운 현실과 묘하게 매치 되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있습니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예전 동료들과 함께 모여 멋진 음악을 연주 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 모습으로 끝마치는 뻔한 결말이 아니라 좋습니다.


어쩌면 소공녀 미소가 사람들에게 깊이 다가갈 수 있었던것도 누구나 한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지만 먹여살려야 할 가족 때문에 , 이 나이에 , 주변것들로 인해 , 손에 잡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 , 배운것이 그것 뿐이라 , 남들의 판단 , .... 이런 것들에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인공 미소의 모습이 대리만족을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난 담배 필 수 있고 위스키 한 잔과 남자 친구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는 미소는 진정 작은공주님 입니다.

온 세상이 집이라 미소는 오늘도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중년의 커피뽑기 7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