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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인 Mar 29. 2016

일곱째날. 뮌헨 우리빵집.

2016년 2월 26일. 뮌헨

일곱째날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 1



역시 이 곳은 독일인 것 같다. 어제 맥주를 3병이나 마시고 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 몸이 땅을 알아보는 걸까? 몇번 안 되는 기회비용을 기어이 활용해 먹겠다는 정신력이 발동한 걸까? 더군다나 오늘 아침은 무척 설레는 곳에 가기로 마음 먹었기에 조금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설렌다고 해서 별스런 곳은 아니다. 
사소한 곳이다. 
그런데 그 사소함이란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지 모른다. 


귀국 후 이 곳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난데없이 떠오르는지 아내와 나는 먹을 걸 먹으면서 꼭 다른 먹을 걸 이야기 하는 한국인의 흔한 습관대로 이 곳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었다. 


그런 걸 보면 
추억은 사소한 데 서리기 마련이다.


뮌헨 밀버츠호펜 역 근처의 "운저 브로틀라덴"


지하철 2호선 밀버츠호펜 역 근처에 그 곳이 있다. 여전한 모습, 꾸밈없는 간판. 이름도 소박한 '운저브로틀라덴" - "우리빵집"이 바로 그곳이다. 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내랑 같이 왔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내는 여기에 갔다 온 것을 가장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주인 아주머니도 여전한 얼굴, 여전한 풍채다. 투박하고 튼실한 독일 빵들이 거짓을 모르는 얼굴로 놓여져 있고 여전히 단골손님들이 농을 하며 드나들고 말끝마다 겙~ 겙~ (아, 이건 정말 한글로 적을 방법이 없는 소리다) 하는 사투리가 정답게 붙고...... 이 곳은 영락없는 그냥 동네 빵집이다. 관리를 받는 체인빵집도 아니고 커다란 지역의 터줏대감 빵집도 아니지만, 이 빵집은 내 기억 속에 자리한 동네의 얼굴 자체다.




여기서 브레쩰이며 젬멜이며 폴코른브로트(통잡곡빵)를 늘상 사 먹었다. 이른 시간에 가면 집에 가서 오븐에 구워 먹으라고 채 마르지 않은 빵 반죽 덩이를 팔기도 했다. 그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왜 이곳을 더 일찍 알지 못했는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평론가 이고의 기분도 아마 비슷했을 거다. 오늘은 행객으로서 빵집 한켠에 마련된 탁자에 앉는다. 생각해 보니 여기 앉는 것은 처음이다. 별 것 아니지만 기분이 오묘하다. 이것도 동네 주민 시절에는 못 해 본 경험이니 말이다.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음식평론가 이고


슁켄샌드위치 한 개, 버터브레쩰 한 개, 

바이스부어스트 두 개, 그리고 커피 작은 잔으로 하나.
별스러울 것 없는 평범한 독일의 아침이다. 
하지만 나는 빵이며 소세지들과 인사를 나누다
벌써 배가 부르다. 



다리를 조금 절지만 사람 좋은 미소가 끊이지 않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한다. 5년 전에 여기 살았는데 너무 그리워서 다시 찾아왔다고 그래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 서양어를 사용하면 역시 나도 모르게 오글거리는 표현을 하고 있다 - 아줌마가 웃으며 여기 굉장히 국제적인(?) 빵집이란다. 필리핀이랑 영국에서 편지도 받는다고. 이 동네 살던 학생들이 귀국해서 보내오는 것 같다. 나는 그 목록에 한국을 추가하게 되어 기쁘다, 그런데 정말 기억이 많이 나더라 - 말했고, 아주머니는 한국에 대해, 내 직업에 대해 이런 저런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곁들여 아침을 먹었다.

나의 아침은 다음과 같다.


버터브레젤 - 이 녀석은 겨울이면 꼭 먹어야 하는 아이다. 브레쩰의 사이를 가르고 거기에 두툼한 버터를 끼워서 (절대 버터를 바르는 게 아니다) 먹는 건데 묘한 중독성과 포만감이 있다. 이것 때문에 겨울에 살이 찐다.


슁켄은 향이 좋은 얇은 햄이다. 하지만 얇다고 해서 빈약한 것은 아니다. 질깃질깃한 식감은 이 사이를 즐겁게하고 통후추와 허브는 후각까지도 만족시켜준다. 이걸 야채와 계란 등등과 함께 젬멜이라는 단단한 빵에 끼워서 샌드위치로 먹는데 오늘 내가 먹은 것은 말하자면 슁켄-잡곡젬멜 샌드위치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치아바타 샌드위치같은 게 있지만 젬멜은 단단하고 씹는 맛이 더 원초적이다. 뭔가 건강해지는 느낌이 마구 든다.



바이스부어스트. 뮌헨의 명물 흰 소세지다. 끓은 물에 삶으면 터져 버리기 때문에 한 번 우루루 끓인 물에다
10~15분을 담궈 놓았다가 껍질을 벗겨서 먹는다. 송아지 고기가 70%, 돼지고기가 25% 정도의 비율인데 
이 비율 때문에 어여쁜 하얀 빛깔이 난다고 한다. 바이스부어스트는 부드럽고 담백한 게 특징인데 알갱이가 씹히는 단겨자 소스(쥐스젠프)를 찍어먹으면 느끼하지도 심심하지도 않게 즐길 수 있다. 궁합이 어찌나 좋은지 이 소스가 없는 바이스부어스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독일식 쓴 커피를 한 잔 곁들이고 우유까지 한 잔 마셨다. 왕같은(?) 조찬이다. 


내가 아침을 먹는 사이 동네 주민들이 드나들며 기분 좋은 백색소음을 들려주었고 동네의 착한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을 기다리며 내 앞에 앉아 연신 코를 킁킁거리기도 하였다. 이런 아침을 오늘 단 하루만 먹을 수 있다니 설렌 만큼이나 아쉽다. 뮌헨 일정을 하루 더 넣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기운이 난다. 이건 든든한 아침을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그리움과 반가움을, 삶과 추억을 
머리만으로가 아니라 혀로, 코로, 눈으로, 손끝으로, 흠뻑 느껴 보았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혼으로만, 영으로만 살지 않고 육으로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내 소박한 아침과 

소박한 추억을 되새기며 
내 소박한 감사를 
까먹고 미처 올리지 못한 뒤늦은 식기도에 
부랴부랴 실어 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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