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6일. 뮌헨 음대. 마리엔플라츠.
독일빵들과 소세지가 아침부터 위장에 잘 포개져 있다. 이것은 단단하고 건강한 포만감이다. 이런 포만감이 있는 아침은 뭔가 성공적인 하루를 예감케 한다. 그렇지 않다면 먹은 음식들에게 미안하잖아? 우리빵집에서 여유 있는 아침을 즐기다 보니 벌써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뮌헨 음대에서 강운이를 만나 빈에서 미처 찾지 못했던 악보를 찾기로 했었다.
신기한 게 벌써 떠나온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음대에 가는 길이며 주소며 대략의 방위 따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마치 오랫만에 청소를 하다가 방 한 구석에서 굴러다니는 한때 꽤나 아꼈던 물건을 보는 느낌처럼 말이다.
낯선데 익숙한 묘한 기분......
한가로운데 가슴은 설레고
편안한데 잔잔한 흥분감이 혈관을 흐른다.
과거의 일상을 비일상으로 겪어보는 것,
낯설게 하기의 효과란 바로 이런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나는 어느덧 뮌헨 음대에 도착해 있다.
강운이가 고맙게도 미리 대출 신청을 해 두었다. 나는 이후 장당 5센트짜리 복사기 앞에서 종이가루가 떨어지는 1945년의 악보를 조심조심 넘겨가며 대략 1시간 가량 복사를 했다. 오트마르 쇠크라는 스위스 작곡가의 괴테 가곡. 하지만 이건 별 자세히 적을 게 없는 지루한 일이니 이쯤 해서 넘어가자. 한국에서까지 와서 복사해 갈 작곡가면 꽤 중요한가 보다 -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래간만에 보는 뮌헨 음대의 브람스 흉상, 막스 레거 두상, 그리고 작곡가들을 기념하는 갖가지 기념주화들. 학교 안에 이런 멋드러진 기념물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복사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점심이다. 유학 시절 신세도 많이 졌던 동생 천경이와 점심을 먹는다. 이 곳에서 무려 변호사인 친구이지만 그 역시 여전하고 익숙하다. 안경 너머로는 리드미컬한 눈웃음이 여전하고 독일어로든 한국어로든 막힘없는 수다를 떨 수 있는 능력이 여전하다. 밥은 꼭 자기가 사겠다는 고집도 여전한데, 그래도 이제는 결혼한 티가 좀 난다는 것 정도가 달라보인다.
추억은 여러가지 색깔과 모양을 하고
옛 시절의 파편과 부스러기가 되어 지난 세월을 따라잡는다.
그것은 무상성의 바람을 거슬러 오는 날개와도 같다.
그와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그가 헥센슈스의 일격을 당해 괴로워 하던 때이다. 헥센슈스란 마녀의 화살(?) 쯤으로 번역되는 말인데 이유 없는 허리통증이 생겨 마치 디스크 환자처럼 거동을 못하게 된다. 그러다 며칠 지나면 정말 거짓말 같이 모든 증상이 사라져 버린다. 정말 마녀가 곡할(?) 노릇이다. 여하간 그 때 나와 아내가 그의 집에 가서 이것저것 시중을 들고 부축을 하고 먹을 것도 싸 가서 나눠먹고 했었다. 화장실도 데려가야 하고 침대에도 뉘여야 하니 그로서는 영 폼이 안 나는 기억이긴 할 거다.
그런데 왜 추억이란 늘 이런 식일까. 뭔가 멀끔하고 멋진 일보다는 어딘가 망가져 보이는 일이 늘 기억의 앞자리에 있다. 그래서 신경림 시인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라고 읊조린 것일까?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사촌누나 내외가 놀러온 일이 있다. 그런데 그 때도 기억 나는 건 먼 타국에서 휴지가 없어 화장실에 갇힌 누나를 위해 한 정거장 반을 냅다 달려가 구원의 티슈를 건네준 일이며, 열쇠를 안쪽에 꽂은 뒤 문을 닫는 바람에 별의별 난리를 다 치다가 결국 창문으로 우당탕탕 들어 왔던 일이다. 아, 얼마나 우습고도 환희에 찬 순간이었나. 폼이 안 나는 일일수록 기억의 윤곽선은 선명하다.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흘러간 세월과 흐르지 않는 기억이 서로 겹쳐질 때 발생되는 일종의 전기 감전을 느낀다.
어쨌거나 대학 뒤쪽의 튀르켄호프라는 식당에 갔다. 아우구스티너를 준다! 그립던 아우구스티너의 에델슈토프 한 모금에 나는 무장해제 당한 사람처럼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점심은 별스럽지 않은 바이에른식의 돼지고기와 으깨서 구운 크뇌델 요리이다. 사실 맨송맨송하고 귀여운 오리지널(?) 크뇌델(감자떡처럼 전분을 많이 내서 둥글게 만든 감자 요리로 쫄깃하고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을 먹고 싶었는데 주문할 때 실수해서 먹게 되었다. 천경이는 뒤늦게 주문이 잘못된 걸 알고 미안해 했지만 그게 별 대수겠는가. 아우구스티너만으로도 이미 흡족해진 나에게는 잘못 시킨 그 요리도 이미 훌륭한 안주였다.
여기서 그치겠는가? 나는 옛 기억이 시키는대로 쉘링 가로 향한다. 예전에 이 골목에서 숱하게 노란색 중고 문고를 뒤졌었는데...... 하며 발걸음이 제 스스로 제 길을 재촉한다. 우리집 근처로 가던 트램 27번 선로 건너편으로 '알테 슈바빙'이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다. 이 집은 티라미수가 일품이다. 비스테카 티라미수와도 비교 불가다. 시트는 절대 젖어서 흩어지는 일이 없고 마스카포네의 농밀함과 신선함은 코코아파우더의 달콤쌉쌀한 향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그러면서도 얕은 단맛이 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드는 푸짐한 티라미수였다. (양이 장난아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하필 이 날, 알테 슈바빙에서는 티라미수를 내지 않았다. 순간 허탈해진다.
나는 꿩 대신 닭으로 파나 코타를 주문했다. 물론 이 집은 파나 코타 역시 훌륭했었다. 달달하지만 끈적이지는 않고 맛이 진하면서도 식감은 탱글탱글하다. 이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곁들인 과일은 단맛을 위한 게 아니라 신맛을 위한 것이다. 사실 과일이 시다는 건 햇살 적은 유럽 땅의 비애인데, 금수강산에 사는 우리로서는 과일이 달지 않고 시다는 게 좀 낯선 일이다. 유럽 사람들이 시고 떨떠름한 과일이라도 어떻게 맛있게 먹어보려고 잼을 만들고 케익 속에 넣고 마멀레이드를 만들고 등등 여러가지 눈물겨운 노력을 해도 - 생과일 맛있는 걸 따라갈 수 있을까. - 라는 게 금수강산 출신인 나의 평소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테 슈바빙의 파나 코타의 경우는 좀 다르다. 과일의 신맛 자체를 잘 이용하여 달달한 크림과 조화시킨 것이 마음에 들었다. 상큼한 마무리! 내 기분도 함께 상큼해진다.
점심과 맥주, 리치한 후식까지 하고 나니 도저히 걷지 않으면 안 되어서 나는 쇼핑도 좀 할 겸 뮌헨 구시가지로 다시 들어간다. 마침 오는 27번 트램을 잡아타고 카를스플라츠에 내려서 마누라가 부탁한 베이비 로션들과 아요나 치약, 우리 아들이 먹을 이유식 등등을 산 뒤 천천히 마리엔플라츠 쪽으로 걷는다. 한가롭다. 이 길을 얼마나 많이 다녔었는지 모른다. 봉긋한 두 첨탑이 인상적인 성모교회의 모습이 반갑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유학을 하던 시절 내내 공사중이었던 성 미카엘 교회가 말끔한 모습이 되어 있다. 덕분에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미카엘 대천사상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름답고도 친숙한 뮌헨의 신시청사. 이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습이다. 다만 이 곳을 떠난 내 마음만 들뜨고 반갑다. 내가 여전히 이 곳에 있었다면 이만큼의 반가움은 느끼지 못하였겠지. 어쨌거나 뮌헨의 날씨 또한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 빈도 프라하도 뮌헨도 마치 미리 짜고 하는 듯이 2월 답지 않은 '기적 같은' 날씨를 계속 선사해 준다.
이렇게 약간 감상에 젖어 계속 걷는데 조금 엉뚱하게 그런 감상이 깨져 버렸다. 여전하고 반가운 줄리엣 동상. 뮌헨의 구시청사 한편에 서 있는 이 동상은 원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도시인 이탈리아의 베로나 시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뮌헨에 기증한 것이다. 그런데 저기 줄리엣 가슴 좀 봐. 그 곳(?)만 반짝반짝이다. 킄. 나도 한 번 만져볼까? 맥주도 한 잔 했겠다, 배도 부르겠다, 반갑고 여전한 얼굴들도 푸근하겠다, 나는 별 일 없이 그저 유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