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성인 May 08. 2016

여덟째날. 덕후의 미덕

2016년 2월 27일. 뮌헨 -> 라이프치히

여덟째날 

2016년 2월 27일 토요일 - 1



여행을 다니다 보면 늘 문제가 되는 게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몸의 다급한 신호에 부응해 주질 않는 척박한 화장실은 만고의 진리인 신토불이를 떠올리게 한다. 위장-창자-괄약근으로 뭉게뭉게 연결되는 스릴 만점의 핫라인을 적나라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내가 겪어본 유럽의 공공 화장실은 관리가 엉망이거나 더럽거나 잠겨 있어서 해우소다운 해우를 해 주지 못한 적이 많았다. 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여!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인 까닭은 전국 어딜 가나 아름답고 깨끗한 공짜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금수강산에 살다 보니 나는 아직도 유럽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공식, 비공식적으로 받는 것에 적응이 안 된다. 공식적인 경우란 동전을 투입해야 (주로 50센트)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고 비공식적인 경우란 주로 화장실 입구에 접시 따위를 놓아두고 자발적으로 동전을 내게끔 넛지를 주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말이 넛지이지 이 경우에도 주로 접시 옆에 집채 만한 흑인 아줌마나 털이 수북한 거친 형님이 감시 중이다. 과거 껍 좀 씹어 봤다는 표정으로 앉아 불꽃 같은 시선을 쏘아 대므로 거의 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기본적 욕구로 푼돈을 추려내려 든다는 데 대한 무의식적 저항감은 사그러 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는 매우 인간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은 단연코 화장실이 아닐까? 



여행 8일째 아침. 그러니까 나의 현재 상황은 용무가 급하다는 것이다. 역 한 켠에서 성업 중인 레일 앤 프레쉬라는 유료 화장실 체인(!)으로 간다. 1유로 동전을 넣고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입구를 들어서는데 뭔가 기분이 묘하다. 그런데 이거 놀랠 노 자일세, 다른 역 지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50센트짜리 할인 쿠폰도 준다. 독일도 많이 서비스 정신이 늘었구나. 그러면서 또 옛날 생각이 난다. 그 땐 왜 그랬을까? 상쾌한 하루를 위해 1유로쯤은 지불할 수도 있는 건데 그 땐 왜 그렇게 아까웠을까. 고집 같은 거였는가 보다. 그도 아니면 심적 여유가 그만치도 없었거나. 


조금 이른 시각, 어쨌거나 볼 일을 보고 나오니 뮌헨 중앙역이 좀 더 정겹게 느껴진다. 이 곳에서 숱하게 기차를 탔었다. 지역 기차를 갈아타고 도시들을 들르며 점심으로는 삼각김밥을 먹고 저녁으로는 맥주를 마셨었다. 기차칸에서는 번역을 하거나 책을 읽었고 독일 철도에서 운영하는 갖가지 종류의 열차를 거의 다 타 본 것 같다. 


수년전 짠내 나는 여행 사진. 정말 저렇게 다녔었다. 참고로 저 때 한 번역이 연광철, 정명훈의 <겨울 나그네> 음반에 실렸었다.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다닌 여행이었다. 표를 한 장 끊고 끝까지 쪽쪽 우려내 먹겠다는 심산으로 쉼 없이 다녔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80개 넘는 도시를 다녔다. 남들이 찾지 않는 음악가의 집, 시인들의 묘지, 문학과 음악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소소한 장소들을 내 발로 찍고 다녔다. 대체 뭘 보러 다니는 건지 설명하기도 번거로운 여행, 유목민 같은 뚜벅이 걸음으로 기념간판 붙은 곳마다 서서 사진을 찍으며 다니는 이상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게 현재의 나에게 얼마나 좋은 자산이 될지를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차를 갈아타거나 중간 중간 내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구간 할인권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중간에 내리는 것도 불가능 하거니와 그럴 자신도 없다. 당당히(?) ICE를 타고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도시 라이프치히까지 직행한다. ICE에선 무료 와이파이까지 된다. 서핑과 잠을 번갈아 조금 하고 책을 조금 읽고 나니 시간이 잘도 흐른다. 사실 이게 더 자연스러운 여행일텐데 나한테는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이전의 내 여행이 무식하긴 했었던 게 분명하다. 


뮌헨 중앙역. 내가 탈 ICE  열차



그렇게 기차를 타고 한 5시간쯤을 달리니 동부 독일의 라이프치히이다. 반가운 얼굴 광윤이가 나를 마중 나왔다. 그 또한 나의 독일 여행 계획을 듣고는 흔쾌히 머물 곳을 내어 주었다. 살다 보면 마음이 쉽게 통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그가 그렇다. 원래는 연주자와 기획자로 만나서 같이 한두어 번 무대를 만든 사이이다. 하지만 그저 일로 만났다고 하기에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금세 친해진 게 그이다. 생각해 보면 둘 다 덕후라서 그럴 거다. 클래식이 마이너인 요즘, 그 중에서도 더욱 심한 마이너인 독일가곡 덕후라서 그럴 게다. 이런 덕후를 내가 어디서 또 보겠어 라는 마음 때문에 반가움이 짙어지는 것일 게다. 어쩌면 그는 내 고생스럽고 무식했던 여행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게다. 그렇게 보면 덕후라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


그러고 보니 아내가 연애시절 한 번은 정색을 하며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근데 너 정말 클래식만 들어?"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아......, 아니...... 시인과 촌장도 들어." 라고 했는데,

아내가, 아, 그러니까 여친이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하아, 혹시 누가 물어보면 그냥 클래식만 듣는다고 해. 더 욕 먹어."


위의 대화는 덕후와 비덕후 사이의 전형적인 간극을 보여준다. 덕후들은 자신들을 비덕후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이 심해지면 덕후의 세계는 폐쇄성을 지니게 된다. "너 클래식만 들어?"라는 그녀의 물음 속에는 그런 식의 폐쇄성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가 들어 있었다. 


그 뒤로 나의 덕후스러움은 많이 완화되었다. 클래식 마니아의 길에서 벗어나와 가요도 좀 듣고, 팝송도 더러 좀 듣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내가 가곡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주기까지 하였다. 그 뒤로 나는 덕후스러움을 일반인스럽게 옮겨주는 일종의 번역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과 가곡을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일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고. 덕후들이 서로를 편안해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덕후들끼리는 별스런 설명도 필요 없고 평소에 소외받던 관심사에 대한 격한 공감이 일종의 격렬한 자기장을 형성하여 신명과 흥이 발산되기 시작한다. 그 뒤에는 아니 대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저들은 모르는 걸까 - 라는 한탄을 거쳐 우리가 저들에게 반드시 알리고야 말리라 라는 식의 선교적 사명으로까지 금방 불붙곤 한다. 그렇게 덕후들은 동지가 되고 저들끼리의 너울을 쉽게 둘러치게 된다. 


결국 덕후스러움의 미덕은 신명과 흥이겠고 함정은 폐쇄성이겠다. 덕후스러움의 미덕을 잘 지키면서 함정을 피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도, 가곡도, 좀 더 재미있는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프치히 쥐트플라츠. 


광윤이는 역시 덕후 답게 나를 보자마자 독일 가곡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슈베르트와 슈만과 브람스의 이야기. 그 뒤로는 나와 그 외에는 알아들을 사람이 별로 없을 한적한 세계가 펼쳐진다. 친절하게 내 트렁크를 받아 끌고 앞서 가는 그는 벌써부터 신이 나 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입가에도 웃음기가 한껏 머금어진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좋아하는 기운이 차면 그것을 나누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기운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설사 좋아하는 것의 종류가 다르고 내용이 다르다 해도 좋아하는 그 마음은 두루두루 다 통하더라. 아내와 십 년을 살다 보니 나는 아무 거나 입에 쑤셔 넣지 않게 되었고, 폴 스미스 지갑에 대한 소소한 선망도 생겼다. 아내도 나랑 살다 보니 어느새 헤르만 프라이 목소리에 좔좔 흐르는 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루두루 통하는 그 좋아하는 마음. 그 마음쳍 사람다운 온기도 함께 실려 흐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째날. 인터메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