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성인 Mar 27. 2016

셋째날, 악보 대신 아이스크림

2016년 2월 22일 빈 - 국립음대, 슈테판 성당, 피가로하우스

셋째날 

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오늘은 이번 여행의 주요 임무(?)인 악보 찾기를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악보들을 좀 찾아가야 한다. 올림푸스홀에서 지난 해부터 거의 매달 공연을 하고 있다. 첫 시즌으로는 <예술가곡으로 만나는 독일 시인 열전>을 올렸고, 지금은 시즌 2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하고 있다. 3월, 4월 2회 공연이 아직 더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은 사실 다음 5월부터 진행될 시즌 3인 <괴테와 음악>을 준비하려는 목적이 있다. 특히 스위스 작곡가인 오트마르 쇠크의 악보가 국내에는 없고, 해외에서도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빈 콘체르트하우스. 뒷쪽에 빈 국립음대 도서관이 있다. 


빈 시립음대와 국립음대의 도서관을 민수 씨의 도움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뿔싸. 결론부터 말하자면 빈에서의 악보 찾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첫번째 이유는, 방학이라 문을 금방 닫았다는 점. 두번째 이유는, 일반 대출이 안 되고 신청대출을 해야 하는 자료라서 받아보는데 하루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 이건 뮌헨에 있을 때도 늘 겪던 일인데 왜 미처 생각을 못했을까? 민수 씨가 멋쩍어 하지만 괜찮다. 뮌헨이나 라이프치히에서 다시 시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지휘자이자 말러의 제자인 브루노 발터의 데드마스크와 인장 반지 (상) 빈 콘체르트하우스에 붙어 있는 말러의 기념현판 (하)



페라리 아이스크림. 리코타 크림와 카라멜에 절인 무화과의 궁합. 

어쨌든 허탕은 허탕인지라 급격히 당이 떨어진다. 나는 달달이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이름은 듣고도 까먹었는데 - 나중에 다시 물으니 "페라리"란다. - 이탈리아 아저씨가 하는 근처 아이스크림 집이 있단다. 과연, 맛있어 보인다. 리코타 크림에 카라멜에 절인 무화과 아이스크림이 있어 그걸 먹어보기로 했다. 



역시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은 최고다! 은은한 치즈향이 감도는 찰진 크림에 적당히 달달한 카라멜, 그리고 무화과 과육이 부드럽게 어우러지고 가끔씩 무화과 씨가 씹히면서 씹는 맛을 더해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창의적인 아이스크림이 이 곳에는 많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피자헛이나 배스킨 라빈스나 스타벅스 등등의 미제 브랜드가 잘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 맛있는데 가격도 엄청 싸니까 제 아무리 거대 기업이라 한들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거다.



어쨌거나 다섯 번째 방문 만에 빈이 내게 환하게 웃어주고 있다. 때가 2월인데 이렇게 날씨가 환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다시 슈테판 성당으로 올라 가 언제 봐도 아름다운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하이든이 성가대를 서고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린 유서깊은 곳. 유럽의 건축물 치고 연중 공사 안 하는 데가 없지만, 슈테판 성당은 공사를 해도 예쁘다.  





커피를 한 잔 해야겠다. 이번에는 하벨카 라는 카페를 가 보기로 했다. 오래된 카페로 커피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대강 민수 씨의 설명을 들으니 예전에 가 보았던 곳인 것 같았는데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때는 카페 안의 담배 연기가 너무나 자욱하여 사진만 몇 장 찍고 그냥 나왔었다. 그런데 그 사이 빈에서도 흡연금지법안이 통과된 건지 이 날은 카페 공기가 아주 맑다. 



비너 멜랑쥬를 시켰다. 비엔나 스타일의 밀크 커피라고 생각하면 된다. 초콜릿 가루가 조금 들어가는 점이 조금 다르다. 역시 커피 맛은 훌륭했다. 우유도 우리나라 것보다 좀 더 풍부한 맛이고 커피를 연하게 마시는 우리나라보다 커피도 진한 게 마음에 든다. 하지만 커피도 이탈리아가 최고인건 어쩔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역 앞에 서서 먹는 70센트짜리 커피도 어찌나 그리 맛있었는지.


카페 하벨카의 비너 멜랑쥬. 


성당에서 다시 방향을 2시 쪽으로 맞추고 돔가세를 찾으면 그 곳에 모차르트 박물관이 있다. 모차르트가 3년을 살면서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지오반니> 같은 명작을 썼던 곳이다. 모차르트의 성공이 가장 눈부셨을 시절 그가 살았던 가장 비싼 집이 바로 이 곳이다. 유학생 시절 빈에 왔을 때마다 이 집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입장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입장료라 해 봐야 한 만원 돈이지만, 그 때는 왜 그렇게 그 돈이 커 보였는지 모른다. 돈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썼다고 생각되면 죄책감 같은 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읽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 고흐의 편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참 많았었다. 빵 한 쪽과 커피 한 잔이 하루 식사의 전부인 사람이 어쩌다가 견디다 못해 빵을 몇 쪽 더 먹고 나서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한 것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한다.


빈의 모차르트 박물관. 일명 피가로하우스.

하지만 이 집에서 생활했던 당대의 스타 모차르트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모차르트의 경제적 어려움은 사실 그의 수입이 적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감당 안 되는 낭비벽 때문이라고 한다. 중산층 가정의 일반적인 생활비의 9배를 벌면서도 늘 빚에 시달린 것은 그의 상습적인 도박 때문이라고 한다. 모차르트의 집 안에 있었다는 세간의 목록도 그가 얼마나 물건을 마구 사 재꼈는지를 보여준다. 아내 콘스탄체가 좀 착했나 보다. 모차르트에게도 호랑이 같은 마누라가 있어야 했을텐데.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몇 가지 유품들과 그가 파티 때 입었던 가운, 그리고 악보들을 바라보며 그의 음악을 떠올렸다. 음악의 길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 거스르는 일 없이 음악의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가장 자연스럽게 읽어냈던 사람, 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음악을 음악답게 했던 사람, 고집도 강령도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도 없었던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 같은 사람. 땅 위에서 살기에는 너무나 어수룩했던 것일까. 아니면 천상의 능력의 광휘로 인해 자신의 어수룩함을 잠시 망각한 것일까?


마지막 방에는 독일 문학의 최대 시인 괴테가 열렬한 모차르트의 팬이었으며 바이마르 국립극장의 연출가로서 모차르트 오페라를 282회나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도 밝혀져 있었다. 괴테가 연출한 <마술피리> 무대 모형도 볼 수 있었다. <괴테와 음악> 시리즈에서도 그의 모차르트 사랑은 중요한 파트를 이룬다.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쉽지만 눈으로라도 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



2월의 빈이 오늘 하루 끝내주는 미소를 보내주었다. 슈테판 성당의 자태는 여전히 아름답고 나는 악보를 찾는대신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시고 모차르트를 생각한다. 이게 얼마만에 맛보는 여유인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좋은 그것. 그것이 여유로움이 아닐까. 나는 실로 오랫만에 좀 여행다운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날. 과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