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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인 Mar 27. 2016

넷째날. 두 명의 프란츠. 슈베르트와 자허.

2016년 2월 23일 빈 - 슈베르트 생가, 호텔 자허

넷째날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빈에서의 마지막 날. 아직도 나에겐 한번의 오전이 더 남아 있다. 민수 씨, 미정 씨와 작별을 하고 빈 시내로 나선다. 민수 씨 내외는 그동안 파스타, 카프레제, 김치찜 등등과든든한 유학생 스타일의 정겨운 아침식사를 제공해주었다. 이 은혜는 잊지 못할 거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생가. 


쇼텐토어에서 트램을 타고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오스트리아 국기가 걸려 있는 집 하나가 나온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프란츠 슈베르트가 태어난 집이다. 사실 슈베르트만큼 박물관 만들기 안 좋은 위인이 또 있을까? 31살에 죽은,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품은 그리 많지 않다. 책이란 다 빌려보고 살기는 친구에게 얹혀 살고 변변한 악기 하나 갖지 못한 그가 무슨 수로 전시실을 채우겠는가? 실은 이 곳도 선생이었던 슈베르트의 아버지의 집이지 그가 독립된 삶을 살아본 장소는 아니다. 그래서 이 곳은 예술가의 가난이 더 절절히 느껴지는 곳이다.



빈에서도 좀 너무 했다 싶었는지 그나마 5년전보다는 좀더 볼 것은 갖춰 놓기는 한것 같다.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피아노가 한대 있지만 그것도 슈베르트 자신의 소유는 아닌 형의 피아노다. 그러니 이 작은 박물관에서

슈베르트의 안경에 온 시선이 꽂히는 건 당연하다. 슈베르트를 말해주는 유일한 유품. 그의 살이, 그의 숨이 닿았을 유일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화가 친구들이 남긴 슈베르트의 초상화들마저 없었다면 이 작은 집은 얼마나 더 썰렁했을까? 하지만, 어찌 하다보니 자신의 삶을 온통 무형의 유산들로만 가득 채워놓고 떠난 서른 한살 짜리 젊은이를 나는 오히려 볼 것 없는 이 집에서 제대로 만난다. 이 집만큼 그의 음악이 더 잘 떠오르는 곳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곳을 다시금 이끌리듯 찾게 되었나보다.



프라하로 떠나기 전 작은 일이 있었다. 


그래도 빈에 왔는데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서 호텔 자허에 들렀다. 이 건물은 예전에 <사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살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자허 토르테로 더 유명하다. 세상의 많은 음식들이 그러하듯 자허 토르테 또한 일종의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한다.  

한 번은 지체높은 빈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궁정 주방장에게 고위 인사들을 접대할 디저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 셰프가 아팠던 것이다. 할 수 없었다. 메테르니히의 손님들에게 디저트를 안 내는 결례를 범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당시 16세 소년에 불과했던 주방장의 아들 프란츠 자허가 이 일을 떠맡는다. 아마 목숨 걸고 만들었을 것이다. 프란츠 자허는 달콤한 초콜릿 스폰지 케익에 살구쨈 - 이 쨈 맛이 기가 막히다 - 을 바르고 한 단을 더 올린 뒤 이를 다시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하여 자허 토르테를 완성한다. 



예사롭지 않은 아버지의 영웅담을 프란츠의 아들 에두아르트는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영웅담에 취해 계시는데 아들이 어찌 그 흥을 깰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자허의 제과점은 에두아르트 때에 이후에 경영난을 겪어 파산하고 만다. 에두아르트가 죽자 미망인 안나는 가업을 이을 아들을 어쩔 수 없이 데멜로 보낸다. 데멜 또한 당시 오스트리아 황실에 디저트를 납품하던 곳이었다. 프란츠의 손자인 에두아르트(아버지와 이름이 같다)는 데멜에서 제과장 견습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에두아르트가 이 곳에서 '에두아르트의 자허 토르테'를 만들어서 팔았다는 점이다. - 프란츠의 토르테와 달리 초콜릿 스펀지가 한 단이다. - 이 때문에 이후 호텔 자허와 데멜 제과점은 "오리지널 자허 토르테"의 상호 사용권을 놓고 세기의 재판을 벌이게 된다. 해결에 무려 10년이 걸린 이 법정공방. 데멜과 자허는 서로 화해하고 "오리지널 자허 토르테"의 상표권은 호텔 자허가, "에두아르트 자허 토르테"의 삼각 문양은 데멜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자허 토르테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보아 더 유명세를 타게 된다. 



사실 나는 토르테 자체보다도 함께 나오는 순결한 우유맛의 크림이 좋아서 자허를 사랑한다. 크림이 듬뿍 든 아인슈패너 한 잔도 함께. 역시 기름맛이나 느끼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토르테는 좀 딱딱하고 거친 질감이지만 안쪽에 발라져 있는 잼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조금 옛날 맛(?)이긴 하지만 그래도 먹길 잘했다.


그런데 프라하에 도착한 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르테랑 커피값으로 50유로를 내고 39.50유로를 받았어야 하는데 확인해 보니 49.50유로다. 웨이터가 10유로를 더 준 것이다. 50센트짜리 자허 토르테 & 커피!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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