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4일. 프라하 드보르작 박물관 (빌라 아메리카)
비수기여서인지 민박집에도 그리 사람이 많지 않다. 된장국과 간단한 샐러드, 누구나 좋아하는 돼지불고기가 아침메뉴다. 나는 양껏 먹는다. 많은 얘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벌써 여기 2주나 있었다는 경영대 출신 취업준비생과 회사 일로 유럽에 나왔다가 프라하에 들렀다는 회사원 둘이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 화사한 그림은 아니지만 취준생 친구가 워낙 넉살이 좋아 그간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갔나 보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 아웃, 나 역시 내일 아침 뮌헨으로 떠나기에 스쳐가는 인연으로서 공통관심사를 조금 나누고 곧 일어선다.
싱크대를 보니 반찬찌거기가 작은 통에 모여 있고 먹고난 그릇들은 식기세척기에 들어가기 전 단계 상태로 포개져 있다. 그 간단한 일을 하는 짧은 순간 독일의 얕은 싱크대에 서서 물을 졸졸졸 소심하게 틀고 그래도 프릴 파워젤은 참 좋아! 이러면서 설겆이를 하던 몇 해전의 일상이 떠오른다.
피로가 쌓이다보니 무릎이 계속 좋지 않다. 프라하의 돌바닥들은 조금씩 더 모난 데가 있어서 자꾸 무릎에 무리를 준다. 나는 핸디와 지갑, 배터리만을 들고 나가려다 내가 프라하 지리의 기본적인 정보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인천공항에서 사온 론리플래닛을 챙긴다. 그러다 결국 백팩을 다시 멘다.
프라하에는 지하철 라인이 세개다. 구시가지 중심부에는 각각 두개의 노선이 서로 만나는 환승역 세 개가 삼각형을 그리며 위치한다. 이동거리가 길어야 2~3 정거장일듯한 넓이라 평소 같으면 그냥 도보여행을 택했을 게다. 하지만 오늘 같은 상태라면 번거롭지만 한 정거장씩이라도 지하철이나 트램을 타야 한다. 어디를 갈지가 여전히 고민이었지만 나는 결국 프라하의 드보르작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런데 근처 지하철 역이 공사중이어서 무정차 통과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나의 여행에는 왜 늘 고행의 요소가 빠지지 않는 걸까?
나는 지도를 보고 한 정거장을 걸어서 박물관을 향해 간다. 중간에 영어로 드보르작 박물관을 물어보았지만
한번은 영어가 안 통할 때 나오는, 매우 익숙하여 친근함마저 느껴지는 애매한 미소만을 돌려받았고. 다른 한번은 - 대학생인듯 하여 골라서 물어보았지만 어딘지 잘 모르더라. 예전 마누라의 어학원 친구 하나가 체코 여자애여서 드보르작의 본토 발음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멋지게(?) 드붜르즈아악! 이라고 했지만. . . 별 소득이 없었다.
어쨌건 나는 빌라 아메리카라 불리는 드보르작 박물관을 곧 찾을 수 있었다. 앞뜰과 뒤뜰에 놓인 허름한 돌조각이며 온화한 붉은색을 띄는 빌라며 드보르작과 참 어울리는 곳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든다.
시인들이며 음악가들의 집에서는 늘 지식 이상의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머리로 아는 것 wissen 이 아니라 겪어 아는 것 kennen 에 근접하는 일이다. 사실 학문 Wissenschaft 만을 위해서라면 이런 겪음의 과정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객관적이고 엄정하며 이론적 순수성을 우선시 하는 학문과
이를 귀와 눈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저마다 예술가와 역동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활동 사이를 오고간다. 지금으로부터 150년전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데 음악이니 예술이니가 다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 드보르작을 한 사람으로서 알아갈 kennenlernen 기회가 없었기에 그의 음악도 언저리를 맴돌다 사라진다. 사람이 늘 먼저인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사회적으로, 사회는 예술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낭만주의의 모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드보르작의 여권, 그가 작곡을 할 때 앉았을 책상과 의자, 그의 피아노, 그의 바이올린, 그와 브람스 사이의 돈독한 우정을 보여주는 브람스의 회갑기념 금화, 후원자들과 팬들, 여러 단체들이 보내온 은제 월계관과 트로피 그리고 그의 필적을 알 수 있는 편지와 악보들. 이 모든 것들을 둘러보는데 내 귀에서는 아무런 장비가 없이도 드보르작의 음악이 들려온다. 루살카의 달노래며 밝음과 어두움이 신명나게 엎치락뒤치락 하는 슬라브 무곡이며 생명력 그 자체인 그의 현악사중주들이 지나간다. 나는 내가 좋아하던 드보르작이 더 많이 좋아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드보르작이 가족들과 함께 풀밭에서 비스듬히 누워 찍은 사진이다. 꾸밈없고 순박하고 때로는 촌스럽기까지 한 우리 식으로 치면 저기 전라도 어느 시골 아저씨 같은 모습의 그가 정말 그답다. 우리가 주로 볼 수 있는 오피셜한 사진에서는 알수 없는 모습이다. 말쑥하고 멋진 프로필 사진보다 시시콜콜한 미니홈피 사진들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고귀하고 신화적 광채가 슬라브적 색채를 머금고 빛을 발하는 <스타바트 마테르> 같은 명작도 있지만, 그렇다고 드보르작은 잘 신격화 하기는 어려운 친근한 작곡가이다. 그의 선율에서 나오는 댄스의 리듬과 축축한 애수와 구성진 굴곡의 가락은 드보르작의 어마어마한 민중적 생명력을 잘 들려준다.
결국 또 CD 한장을 샀다. 뮤지움 2층의 뮤직스테이션에서 음악을 듣는데 아메리카 현악4중주의 음원이 파노차 4중주단의 것이었다. 체코의 국민레이블 수프라폰 녹음. 체코에는 스메타나 콰르텟이 있고 스캄파 콰르텟도 있고 야나체크 콰르텟도 있을 텐데 약간 생소한 악단의 연주가 올라와 있는게 조금 의아했지만, 음악을 들어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독일이나 미국 악단들의 세련됨이나 번지르르함, 다르게 말하면 음악적인 기름기(?)가 파노차의 연주에는 없다. 드보르작스러운 건강함과 담백함 그리고 좋은 의미의 시골스러움이 소리마다 묻어나온다.
행복하다. 진짜다.
아닌 척을 아무리 해 봐도 실은 촌사람 기질이 다분한 나는 드보르작이 고맙다.
이 곳에 보내준 아내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