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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산적자 Apr 09. 2019

선행학습의 폐단이 없는 그곳, 회사 (미리)

그래도 좀 미리 하자



<어느 날 회사의 대화>


팀장 : 이대리 이거 했어?

대리 : 아니요. 아직 기한이 남았는데요?


팀장 : 그래도 미리 좀 하자.

대리 : 지금 다른 일이 많아서 미리하진 못하겠습니다.


팀장 : 뭔 일이 그렇게 많냐? 그래도 미리 좀 하자.

대리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미리 할 수 있다는 건 가용 에너지와 시간이 있다는 뜻인데, 안그래도 없는 시간과 에너지에 팀장님은 항상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저에게 시전하시지 않습니까?


팀장 : 하하~ 내가 그랬나? 나도 위에서 쪼우니까 그런거다. 이해 좀 하자.

대리 : 이해는 되지만 일을 하고 싶게 하는 환경을 제공해주셨으면 한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고깝게 듣지 마시고 민심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팀장 : 민심? 그래도 미리 좀 하자.

(더 이상의 대화는 돌림노래라 생략한다)





<개인적인 고백>


이렇게 앞뒤 없이 미리 하라는 팀장, 기한이 남았지만 미리 일을 챙길 수 있으면 자신도 한번 더 검토할 수 있고, 일의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정말 맞는 말이다. 그는 완벽주의자고 나는 완료주의자다. 그런데 나는 마감이 있으면 마감에 맞춰서 일을 하는 편이다. 마감에 시달리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 글을 적고 있다. 


일을 미리 한다는 건 위의 대화에서 이 대리(저자 본인도 이대리긴 하지만 저자는 아님에 유의하자)가 말하는 것처럼 시간과 에너지가 있을 때 할 수 있다. 아니면 하는 일 자체가 별로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여유를 느껴본 지 오래 됐다. 연차가 올라감에 따라 맡는 일이 많이 늘었다. 잡일도 아직 하고, 맡은 일의 난이도도 올라가니 이중고다. 생산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적이고 소진되고 나면 더 이상 추진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미리 하는 삶을 위한 해결책>


그래도 미리 하면 좋으니 팀장의 말대로 미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솔루션을 제시한다. 눈에 보였을 때 바로 처리하고, 끝날 때까지 놓지 않는 끈기가 필요하다. GTD(Get Things Done, 순서도를 통한 자동적 업무 처리 방식)의 원칙을 살펴보면 최고위 관리층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일은 닥치는대로 처리하는 게 우선순위를 부여해서 처리하는 것보다 성과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나거나 일을 처음 접했을 때, 바로하면 그 당시에 얻은 정보로 바로 움직일 수 있다. 추가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특정 수준까진 도움이 되지만 임계점 이상의 정보는 우리의 생산성과 의사 결정을 망치는 적이다. 유관 부서가 있는 경우엔 관련 당사자에게 연락하고, 보고서라면 제로 드래프트(최종본의 얼개를 가진 초안)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많은 일의 지연이 진행하다가 애매한 상태에서 일이나 사람에 질려서 더 이상 하기 싫을 때 일어난다. 독자분들도 실제로도 많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만 그런건 아니라고 해달라.) 이렇게 일이 밀리면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마감이 다가올 때는 마감에 맞추기 위해 시달린다. 이렇게 되니 여유 없는 회사 생활이 계속된다. 악순환에 빠진다. 회사 생활에서 여유가 없으니 일상에서의 마음도 조급할 확률이 높다. 







<나에게 맞추는 미리>


어떻게 해야할까? 한 템포 더 조급하면 된다.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바로 움직이면 같이 일할 사람이 있을 경우, 업무를 나에게 맞춰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준 양식을 받으면 나의 필요에 맞게 한번 더 가공해야 하는데, 내가 양식을 만들어서 상대에게 먼저 주면 상대가 나에게 맞추게 된다. '미리'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신경쓰면 안 되지만(미리 다 해놓으면 더 시키니깐) 적당한 선에서 우리에게 주도권과 선택권을 안겨준다. 이렇게 선택권이 있다면 회사가 우리에게 쥐어준 일이라도 우리는 제한된 양이나마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다.


막상 닥치는 일들만 처리하다보면 삶에서도 쳐내는 방식의 라이프 스타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작 삶에서 중요한 일들을 미뤄뒀다가 임박해서 처리하는, 마감에 허덕이는 삶, 이게 당신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에서 연습해야 한다. 바로 하는 업무 스타일을 통해 미리하는 삶, 그리고 그를 통해 여유를 느끼고, 회사에서의 여유가 개인적인 삶의 여유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도 마감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모든 권유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by 위버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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