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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산적자 Apr 16. 2019

들어올 때는 자유지만, 나갈 땐 아닌 그것 (출퇴근)

회사원의 필수코스


'출퇴근 대서사시의 시작'


회사를 다닌다면 누구나 해야 하는 출퇴근. 오늘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회사로 향한다. 출근하는 꿈이 자는 도중 나를 깨운다. 이렇게 자다 일어나면 피곤하다. 회사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맞는 아침은 내가 마치 병든 닭이 된 듯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늘어져서 식탁 위에 붙어 있고 싶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노예인 우리에겐 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회사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살과 내 살이 닿는다. 찍찍한 서로의 기운을 공유하며 소스라치듯 팔을 뗀다. 이럴 땐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 책을 못 읽으니깐 차는 패스한다. 점심 시간만큼이나 걸리는 통근 거리는 아침부터 나를 더 피곤한 상태로 몰아간다. 보통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정해진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한다. 회사 도착하는 시간도 거의 똑같다. 나는 항상 들어갈 때 야간조 통근버스가 나온다. 경비 아저씨가 나에게 '참 일정하게 회사 버스 나가는 시간에 오시네요'라고 하더라. 플랜맨 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회사에 들어선다.




'출근 의식'


들어가는 길에 정수기가 있다. 물을 한 컵 먹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하느라 고생했으니까.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간 밖과는 다른 차원이 펼쳐진다. 나는 정확히 8시 30분까지 출근이다. 보통 27분에 회사문을 지나간다. 쓰레기를 비우고 앉으면 30분이 조금 넘는다. 오늘은 스마트워크를 구축한 회사가 아니라면, 1인 기업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하는 출퇴근에 대해서 말해보자.





'출근은 지키면 퇴근도?'


나는 출퇴근을 지키고 싶어 하는 편이다. 출근 시간을 지키는데 왜 퇴근 시간은 지키면 안 되는가? 그렇게 규칙을 강조하고 절차를 강조하는 회사인데 유독 퇴근 시간에는 관대하다. 원칙을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에게 퇴근 시간도 지켜야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지 상상이 안 된다. 이건 공통 사항이고, 출퇴근은 부서의 특성을 많이 타는 편이다. 우리 팀은 출퇴근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할 일만 다 하면 가도 된다. 나름대로 빠른 퇴근 문화가 잡혀 있다. 다른 팀은 그렇지 않은 부서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정해진 퇴근 시간에 나가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신입의 미덕'


나에게도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20-30분 정도씩 빨리 왔다. 신입 사원 때는 정신을 못 차린다. 미리 와서 정신 차리고 일을 시작해야 사고 치지 않고 보낼 수 있다. 나의 신입사원 시절을 생각해보면 참 못했던 것 같다. 메모해놓고 다시 보지도 않고, 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면서 실수를 반복했다. 이 모든 것이 메모를 제대로 하고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신입 사원 때는 조금 일찍 가는 걸 추천한다. 잘 보이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는가? 나처럼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을 놓으면 딱 맞춰 가면 된다. 그런데 짬 먹을수록 더 빨리 오는건 미스터리다.




'경영 VS 생산'


공장이 있고, 생산과 연관된 부서는 빨리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주말에 공장이 가동되면 출근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와 다른 팀 사원의 출근 및 주말 근무 여부를 보면 확연하게 다르다. 


나(경영) 8시반 출근, 6시 퇴근(유동적), 주말 근무 없음

후배 (생산) 7시 출근, 8시 퇴근, 주말 격주 출근 


내가 한 번씩 일직 때문에 회사에 나가면 후배가 깜짝 놀란다. 절대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 부서의 직원이기 때문이다. 생산은 이렇게 주 5일제가 보장된 경영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경영은 휴식 공간이 있는 생산을 부러워한다. 연구소에 가거나 생산 공정에 가면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연구소 임원의 급습을 막기 위해서 문에 방울을 달아 놓고 스마트폰 게임을 한다. 연구소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왜 그렇게 일이 추진 안 되는지는 이 방울에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주말 근무할래? 아니요'


한 번씩 주말에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럼 주중에 시키지 왜 주말에 나오라고 하냐고 말하고 싶지만 안된다고 한다. 2-3일 전부터 말해주면 모르겠지만 전날에 애기하거나 내 업무가 아닌 경우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한다. 내 분장일 때도 전날 갑자기 말하는 건 안 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나의 선이다. 송곳에 이런 말이 나온다. '싸워봐야 어디까지가 내 선인지 알 수 있다' 어디까지 물러설 것인가? 한없이 물러서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뒤는 벼랑일 것이다. 회사도 중요하지만 당신의 주말이 더 중허다. 당신의 삶은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삶을 위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뭐가 우선인지 생각해보자. 회사일 중에 꼭 주말에 해야 할 일은 없다. 주중에 되도록 처리하자고 해라. 업무 지시만 제대로 하면 주중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집에 일을 갖고 가면 하기도 싫고 잘 안된다. 공간의 분리는 꼭 필요하다. 회사 일은 회사에서 하자. 그리고 주말은 꼭 사수하자! 굳이 당신이 주말에도 회사 일을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퇴근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선?'


출근 시간만큼 퇴근 시간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보자. 우선 할 일을 모두 끝내야 한다. 이 '모두'의 정의는 그 날에 해야 하는 적정한 업무다. 이 적정한 업무란 타부서에서 요청이 온 기한을 지킨다든지, 선임의 지시로 오늘까지 만들어야 하는 자료랄까. 이런 상도덕은 지키고 퇴근해야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짬밥이 없고 정신 없을 때 시킨 거 안하고 가다가 잔소리 먹은 적이 있다. 이젠 안 그런다. 시킬 때 기한을 물어본다. 언제까지 해야 되냐고 말이다. 해당 날짜까지 해야 하는 건 다 하고 퇴근한다. 이 시간이 되도록 6시를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상사가 퇴근 안 해도 집에 가는 시간을 설정해둔다. 나는 6시로 하고 싶은데 30분 정도까진 기다린다. 퇴근 경비가 삼엄한 경우가 있다. 팀 전체의 프로젝트나 보고자료가 있을 땐 삼엄하다. 이렇게 내가 할 게 없는데 나가진 못할 땐 일하는 척 하면서  하얀 workflowy 화면에 글감을 짜거나 개인 노트를 펼치고 (업무 노트와 똑같이 생겼다) 메모를 한다.




'야근의 유혹'


이전에 한창 야근을 할 때가 있었다. 일은 많고, 방향도 잘 안 잡히고, 시키는 일도 많아서 주 2-3회씩 야근을 할 때가 있었다. 회사 버스를 타면 집 앞까지 갈 수 있다. 8시까지만 야근하고 회사 버스를 타고 가는 달콤함이란 착각에 잡혀 있었다. 그 당시에 정말 힘들었으나 버텨낸 내가 대견하다. 요즘은 메모를 통해서 업무 역량이 많이 늘었다. 쳐내는 일은 많지만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는 편이다. 다시 야근으로 돌아오면, 야근은 달콤하다. 주위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기도 하고 나 혼자 있는 공간의 적막함이 좋다. 나는 적막한게 좋다. 전화도 안 오고 내 세상 같다. 하지만 야근 수당이 없으면 야근은 하지 마라. 착각일 뿐이다. 충실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일에 사로잡혀 꼭 끝내야 한다고 믿고 남아 있는 것이다. 이건 자발적인 야근에 해당한다.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있는 건  뛰쳐나가는 방향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지금 가는 중입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살다 보면 한 번씩 지각할 때가 있다. 환승하려는 버스가 너무 밀려서 그렇다든지, 스마트폰이 꺼져서 알람이 안 울렸다든지 말이다. 이럴 때는 미리 회사에 알려주자. 나의 기준은 10분이다. 5분 늦으면 말 안 하고 10분 늦으면 말한다. 이실직고 하는 게 마음도 편하다. 내 맘도 편하고 상대방의 걱정도 덜어줄 수 있다. 초조한 나만큼이나 나타나지 않는 쓰레기 담당자의 No-Show에 팀원들도 불안해한다. 나는 지각은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정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 27분에 회사에 도착한다. 이를 위해서 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빨리 가지도 않는데 늦게 나타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딱 한 번 일어났는데 8시였던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 연락해서 늦잠 잤다고 말하고 느긋하게 9시 넘어 회사에 도착했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이해한다. 되도록 이해시키고 이해받는 문화를 만들자.




'근태는 성실함의 척도'


돈을 많이 받을수록 회사에 빨리 오는 것 같다. 돈을 많이 받던 시절은 아니지만 이전엔 내가 사무실에 1~2위로 들어가던 적이 있었다. 전화 영어를 하던 시절인데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야근의 뿌듯함과 비슷한 쓸데없는 나름의 뿌듯함이다. 이렇게 근태는 성실함의 척도지만 빨리 온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제대로 정해진 시간 내에 처리하는 것도 유능함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스스로 학습하면서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성장은 야근하지 않기 위함이 크다. 막연한 성실함을 보여주는 과-차장급들도 있다. 빨리 오고 늦게 가는 식으로 자신의 성실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연출에 환멸을 느낀다.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업무 다 하고 정시퇴근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지킬 건 지키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지킬 게 많은 회사라면 받을 것도 많아야 한다. 월급에 더불어 하나의 복지가 퇴근 시간이다. 필사적으로 쟁취하도록 하자.




'케바케, 요청사항' 


이 글은 수년간의 데이터베이스를 경험으로 작성되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와 분위기가 다른 곳도 많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만 할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할 일을 했다면 나갈 권리도 있어야 한다. 회사는 어찌 보면 유한한 월급을 주면서 무한한 충성심과 책임을 요구하기 쉬운 곳이다. 그래야 회사 이익이 나고 추가 인원이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생각하는 근무자로 살아가야 지속 가능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관리자분들에게 부탁한다. 출근을 지키면 퇴근도 지키는 문화 꼭 만들어 나갔으면, 본인도 그걸 분명히 바랄 것이다.




오늘도 사원증이 인식기를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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