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나는 엄마에게서 정신적인 독립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인을 멀리 하겠다는 다짐을 빅토리아에서는 슬며시 내려놓았다. 당시에 일기를 올리던 블로그를 통해 빅토리아에 살던 좋은 한국 친구를 만나 마음이 열려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 인연이 이어져 나는 똑 닮은 룸메를 얻을 수 있었다.
갑자기 집을 옮기게 된 날, 한국인 사이트에서 괜찮은 조건의 집을 발견했다. 이미 짐을 다 싸 둔터라 바깥에 나와있는 옷을 대충 겹쳐 입고 새로운 집을 보러 나섰다. 집을 알아볼 땐 처음부터 감이 온다. 이 날은 새 집을 보러 나서는 저녁의 공기가 평소보다 좀 더 청명했다. 왠지 이 집에 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로 보러 가는 집은 원래 집과 한블럭 밖에 떨어지지 않은 오래 됐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아파트 였다. 거기서 나는 민을 처음 만났다. 처음 본 순간 느낌이 좋았다. 아직 캐나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데 나보다 4살이나 어린 민은 똑부러졌고 다른 룸메와의 영어 대화에도 막힘이 없었다. 다른 인종에게 어떤 동양인이건 서로 비슷하게 보인다지만 내가 봐도 민과 난 닮은 꼴이었다. 둘이서 남자친구네 가게에 가면 일하는 친구들이 우리 둘 중 누가 나인지 몰라 갸웃거리며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왔는데 2명이다고 알려주는 일마저 있을 정도 였다. 그렇게 말하면 남자친군 민과 내가 왔다는 걸 알았다. 나와 닮은 민과 나는 빅토리아에서 함께 살았다.
렌트비를 아끼기 위해 우리는 거실을 함께 썼다. 같은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황당한 문화차이 같은 일은 있을 일이 없었다. 되려 대학 기숙사 같은 분위기가 났다. 요리를 해서 나눠 먹었고 가장 싼 중국인 마트에서 같이 장을 봤고 가끔은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누군가 새로운 제품을 사먹고 맛있는 걸 발견하면 서로 먹여주고 신이나서 같이 사러 가곤 했다.
하루는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민은 줌바를 간다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윗셔츠를 벗는 민의 등에 작은 타투가 눈에 띄였다. 민의 타투를 처음 봤다. 문신이 있었어? 민은 예전에 캐나다에 있던 시절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어 자기가 직접 메이플립을 그려서 몸에 새겼다고 뿌듯해 하며 이야기했다. 나는 적잖히 놀랐다. 엄마가 뭐라고 안하셨나? 엄마가 모르시나? 어떻게 설득했지? 하는 생각이 맨 처음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제 다 컸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돈을 모아 지구를 떠돌고 있었지만 아직도 나는 엄마의 허락을 1순위로 올려놓은 다큰 미성년자일 뿐이었다. 여태껏 엄마의 말을 거스르면 엄마가 화날까봐, 슬플까봐 되도록 하지 않으며 살았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것, 엄마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는 것은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더 낯선 일이었다. 좋은 딸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책임도 내 것이 아닌체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전 까진 그걸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는데 나 자신이 더 놀랐다. 그때 살풋 내가 가진 것은 나의 몸이고 무엇이든 내 선택에 달렸다는 걸 느꼈다.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고 조금 외롭기도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캐나다에서 나와 닮은, 어쩌면 동일시 했을지 모르는 룸메의 등에 새겨진 작은 타투를 보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결정도 책임도 모두 내 몫이었다. 여행에서 그런 감정들을 몇번이고 더 겪으며 나는 엄마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을 했다.
엄마는 엄마의 삶, 나는 나의 삶을 산다. 우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지만, 각자의 독립된 인간이다. 너무 당연해서 쓰고 나면 별다를게 없지만 나는 그 걸 그날 처음으로 감지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가 싫어할까봐 하지 않았던 탈색을 했고 원하는 대로 옷을 입었다. 대신 책임은 모두 내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나의 탈색된 머리이나 까만 피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내 결정이라는 것에 조금씩 동의를 해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쩌면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엄마의 선택이 늘 최선인 것은 아니다. 언제나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