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세계여행, 그리고 백수의 한국 적응기
퇴사 후 세계여행, 돌아오니 백수.
서른살 굿수진의 좌충우돌 한국 적응기
알바만 하고 살아도 괜찮을까?
1편/
여행을 하면서 낯선 문화가 주는 특유의 자유와 해방감에 풍덩 빠졌다. 한국으로 돌아가야할 시기가 스멀스멀 다가올 때마다 부정하고 싶어졌다. 한국으로, 특히나 복불복 야근으로 점철된 한국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외국에 남는다고 해도 워킹 비자도 없는 일개 여행객 신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그럴 때마다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재미있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일을 잘 하리라.
여행을 떠나기 전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 운이 좋게도 재미있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그 기억이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겐 어쩌면 동아줄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있던 3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그 중에서도 회사에서 수입한 영화 <50/50>을 마케팅하는 일은 정말이지 신이 났다. 회사 자금을 투자해 벌인 신사업이니 만큼 어떤 프로젝트보다 압박이 크고 야근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열정적으로 우리 영화를 사랑했고 (또보고 또 봤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내내 영화에 대한 잡담을 했다. 재미있게만 일했냐고? 아니. 업계 분들이 3만명 채우면 성공할거라 봤던 <50/50>은 예상관객 5배를 뛰어넘는 15만 4290명으로 최종 스코어를 마감했다. 모두가 우리의 마케팅을 새로워했고 재미있어 했다. (<50/50>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꼭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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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으로 배웠다. 죽도록 일한다 =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즐겁게 일해서 성공하는게 더 옳은 거란 걸.
그런 경험을 이미 한데다 여행을 다녀오고 좀 뾰족해진 나는 도무지 취업을 하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취업사이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원이라도 한번 해보자, 하고 이력서를 채워넣다 가족들의 나이와 직업을 낱낱이 채워야하는 칸을 마주하고는 창닫기 버튼을 누른 일도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은 여러 스타트업과도 만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같이 일하고 싶은 회사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에 들 경우엔,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들을 내려 놔야만 한다거나, 스타트업인데도 불구하고 지원자인 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곳이었다던가 하는게 이유였다.
그렇게 눈이 높은 구직자 생활을 이어갔는데 몇개월 후에 생활자금이 똑 떨어지고 말았다. 좋아하는 곳(회사)을 찾지 못할 바에야 알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활비만 충당할 수 있는 단순알바를 하면서 그 동안 여행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일에 잠시 집중하리라 계획을 틀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대학생 친구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기도 했고, 영어 번역 알바도 하고, 이벤트 현장 지원 알바도 하면서 간간히 용돈을 벌었다. 어쩌다 프리타가 되었지만 그럭저럭 살만 했다. 하지만 곧 하나뿐인 오빠가 결혼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목돈의 축의금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 자신에게 일곱번 양보해서 일주일에 며칠 출근하는 알바라도 해야 했다. 영어를 쓸 수 있으면 좋겠고, 너무 길지 않은 업무시간, 단순한 일일 것, 집에서 가까울 것 등등 몇가지 기준을 세우고 나는 알바 탐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머지 않아 미군 부대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 다음편은 스타트업 구직 에피소드와
- 미군 부대 호텔 레스토랑에서 알바한 이야기
- 일하고 싶은 기업을 찾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