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밈 Oct 18. 2019

14. 오늘 하루 웃은 적이 없다

이건 그냥 B급 일기

#1.

요즘 출근하고 퇴근하기 전까지 일하면서 웃지 않는다. 옆 직원들과 고된 업무를 한탄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긴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사무실에서 좋아하지 않는 관리자들 앞에서는 더더욱 웃음기를 숨긴다. 그분들에게는 미소 하나도 아깝게 느껴져서 더욱 단답형으로 말하고 차가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그들도 나에게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 매일 하는 남자 친구와의 통화도 즐거운 건지 즐거운 척하는 건지 헷갈린다. 내가 정말 좋아서 웃는지 예의상 웃는지 모르겠다. 주말에 가족들이 모이면 정말 웃긴 상황이 아니고서야 웃음을 아낀다. 언제부터 이렇게 딱딱해졌을까? '긍정적으로 살아야지'하고 매일 생각하지만 요즘 내 상황에선 웃음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웃고 즐거워해 버리면 이 상황에 더더욱 안주하게 될까 봐 무섭다.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순간, 회사 사람들에게 모든 정을 주고 마음을 열어버릴 것 같다. 그러면 너무나도 이 조직을 떠나고 싶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생기게 될까 봐 무섭다.


난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 같다. 사실 순하디 순한 얼굴을 가졌지만 잔뜩 웅크리고 사람들에게 가시를 내보이며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하고 외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야!' 하고 나를 가두어버린다. ‘지금은 고통과 인내의 순간을 견뎌내야 할 시기지, 희희낙락 웃을 때가 아니야!’ 하고 스스로에게 채찍직을 하기 바쁘다. 사실 깔깔깔 웃으며 모든 순간에 즐거워하며 긍정적으로 살 준비가 되어 있다. 너무너무 그렇게 살고 싶은데 어느 한 구석도 만족할 수 없는 나의 현재 모습을 멍하니 보는 순간 그럴 수가 없다. 결국 다시 쳇바퀴를 돌리고야 만다.




#2.

친구들 단톡방이 있다. 단톡방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말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침묵한다.


나는 이 친구들이랑 달라. 이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쟁취해냈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잖아? 혹은 적응했거나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애들이지. 난 내가 원하는 것이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답안지를 몇 가지 손에 쥐고 달려가고 있지만 이미 많이 넘어졌어. 아무도 모르는 생채기가 마음에 가득하고 너덜너덜해졌어. 모든 여유가 그 헤진 구멍 속으로 빠져나갔는걸.


혼자만의 즐거움도 제대로 못 누리고 있는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헷갈리는 순간은 온다. 내가 너무 힘든 순간 그 감정에 과몰입해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게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닌지. 사실은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괜찮은 것일 수도.




#3.

설리가 죽었다. 그것도 자살. 믿기지 않았다. 슬픈 감정과 우울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누군가는 세상에 가난으로 병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는 기아로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데, 대중의 관심으로 돈도 많이 버는 안면도 없는 연예인이 죽었다고 그렇게 슬퍼하냐며 비난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25살의 어린 사람이 한 송이 꽃을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고 자살을 했다. 그 자체로 너무 허탈함과 공허함이 느껴졌다. 죽음 자체로 슬픈 이유도 있지만 그 생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던 생이어서 아깝고 안타깝고 허무함이 느껴져 슬픈 이유도 있었다. 우린 왜 사는 걸까? 죽음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 누가 봐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신감 있고 잘 웃고 행복해 보였던 그런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의문이 든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사람도 자살을 하는데 나는 왜 살고 있을까? 대중으로부터 무차별적 악플을 받지 않으니까? 나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있는데 그건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닐까? 산다는 건 뭘까. 사람들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욕을 할까? 그들은 고작 언론 기사 몇 개로 짜 맞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당당하게 뒷받침할 수 있을까? 또다시 시작된 그들만의 물어뜯기 공격에 혀를 내둘렀다. 이제 댓글은 보지 않을 테다. 누군가를 꼭 한 명 희생양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공격해야 할 적으로 삼고 헐뜯는 그들을 보는 순간 치가 떨렸다. 제대로 모르면 가만히 있지 왜 남의 인생에 저렇게 온 힘을 다해 부정적인 기운을 쏟아 낼까?!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나 주위에도 많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사람을 비난하고 깔보는 말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말을 듣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바뀌지 않았고 어느새 나는 침묵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에 염증이 났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말없이 바라봐주는 사람들은 그렇게 침묵하고 방관하게 되고 나쁘고 험한 말만 세상에 남아 활개 치니 그녀는 떠나버렸나 보다.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