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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Mar 04. 2020

16. 퇴근하고 뭐해?

어느 날, 당연한 걸 멈추고

저녁 6시. 퇴근하고 나서 하는 일은 꽤나 당연하게 정해져 있다.


먼저, 집에 돌아가서 저녁 준비를 한다. 그리고  왓차플레이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밥먹고는 설거지는 잠시 미뤄두고 인터넷 뉴스, 유튜브 등을 보다가 8시쯤 밀린 집안일을 한다. 마지막으로, 하루의 묵은 때를 씻겨낸 후 새로운 마음으로 이직 공부를 시작한다. 보통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이 모든 행동들을 하고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내가 이직을 준비하지 않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만약 내가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면? 과연 퇴근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그토록 바라던 취직을 한 후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지? 무엇을 위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걸까? 퇴근 후, 남들 다 하는 게임, 영화감상, 운동, 모임, 공부 등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 정말 행복한 인생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을까? 결국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말하는 결혼, 육아 이런 퀘스트를 깨야 제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마 혼자만의 삶에서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퀘스트가 생긴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퇴근 후 혼자만의 삶에 지루함과 공허함을 느낀 사람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삶의 방식이 '결혼'이 아닐까. 취업으로 인생의 목표가 끝났으니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몰두해서 뭔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나 혼자서 아주 잘 살고 있다. 코로나만 잠잠해지면 다음 달부터 보드게임 모임도 나가고 춤도 배울 예정이다. 평소처럼 이직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보겠지. 그런데 이런 생활을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니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기분이다. 진짜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고등학생 때와 20대 초반에 내가 꿈꿔왔던 것들 대부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상상하던 인생과 진짜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처참하게 느낀 지금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해야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알차게 변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달라질 수 있을까? 뭔가 대단한 걸 이루어 명성을 떨치고 큰 부자가 되고 싶은 것보다 정말 내가 살면서 보람과 만족,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껴 인생의 충만함을 느끼고 싶다. 이런 면이 회사에서는 잘 충족되지 않으니 퇴근 후의 삶에 더욱더 목매게 되는 것 같다. 여유를 가지고 쉬면 쉬는 대로 조바심과 압박감이 생기고, 또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면 피곤함이 밀려오면서 과연 여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옳은지 의구심과 불안감이 생긴다.







결국 내 인생의 목표는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육아도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 보람과 만족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다. 이건 내가 이직을 성공해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도 절대 당연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이직을 해도 그 회사만의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고 결혼을 해서 사랑스러운 아이가 생겨도 그 나름의 고충을 겪을 테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무의식적으로 살던 대로 살다가 계속해서 똑같은 고민을 하겠지.


결국 이 고민에 대한 답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 내가 이번 생에서 진짜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만약 끝끝내 찾지 못한다면 지금 이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소소한 하루 그 자체에 만족과 행복을 느끼면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지금의 건강과 오늘의 평범한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비일상일 수도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하루의 무탈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밥 먹고 책 보고 누군가와 떠드는 평범한 일상 순간순간마다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수밖에.


인생에서 회사 빼고 나만 봤을 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적어도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무것도 스스로 생산해낼 수 있는 게 없더라도 회사 안이든 밖이든 그런 밝은 기운이라도 뿜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충분할 것이다.



"네가 즐겁지 않은 건 즐길 맘이 없기 때문이야. 일뿐 아니라 인생이든 뭐든 시시하다고 여기면 시시해져. 즐길 수 있는지 없는지는 마음먹기에 달렸지 않아?


- 드라마 『시시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中




아마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를 살면서 다시 고민에 빠질지 모르지만. 마음가짐은 긍정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즐길 수 있게 능동적인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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