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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Jun 10. 2020

17. 장례식장에서 주식을 이야기했다

인생의 본질이란

친한 회사 동료의 아버지께서 수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60대 후반의 이른 연세에 결국 생을 마감하셨다.  다른 동료들과 시간을 맞추어 장례식장에 찾아갔고, 우리는 절을 한 뒤 상에 둘러앉아 동료로부터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들었다. 동료가 작년부터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며 힘들어한 것을 익히 알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짠했다.


이 동료는 아마 지인들이 올 때마다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며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겠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마음 편하게 슬퍼하지 못하고 힘든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아무렇지 않게 제3자 이야기하듯 툭 털어놓겠지.


장례식장도 결국 결혼식장과 별반 다를 게 없구나. 결혼식이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 되어 오롯이 둘의 연애를 추억하고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시간으로 꾸며지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손님 모시기가 더 중요하고 무엇을 먹었는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신랑, 신부가 주야장천 주례의 말만 듣다가 수동적으로 '네!' 한 마디만 하고 30분 만에 30년 동안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던 결혼식을 끝내버리는 것처럼.


장례식장도 돌아가신 고인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손님 모시기가 주인 것 같았다. 찾아오신 분들은 고맙지만 유족들은 슬픈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손님을 맞이하기 바쁘다. 고인의 얼굴을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왔다가 밥을 먹고 하하호호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간다. 그곳에서 진정 고인을 추모할 수 있긴 있는 걸까. 그곳에서 유족들은 진정 슬퍼할 수 있는 걸까. 고인이 살아온 수십 년의 다사다난했던 인생은 누군가에게 고작 30분으로 기억되고 소멸된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우리는 동료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다가 각자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있냐, 아이를 낳을 거냐부터 시작해서 누구는 어떻게 살고 있다더라, 회사가 어쩌고 저쩌고 등등.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주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주식 강연을 듣고 왔는데 어떤 주가 좋다더라, 요즘 많이 벌었냐, 수익률이 몇 프로다 등등.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나는 혼자만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진정으로 기억해주는 건 그 사람을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밖에 없겠구나. 정말 큰 업적을 이루고 대단한 위인으로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의 람이 아닌 이상,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죽은 사람들은 가차 없이 바로 세상에서 소멸되겠구나. 그저 누군가의 가십으로 오르내리다 말겠구나. 가족과 친구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겠구나. 이토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겁게 자리한 공간에서도 한낱 주식 따위를 생애 가장 중요한 문제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는 아주 가볍게 묻히겠구나. 죽어서도 죽어 묻히겠구나.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구나.

사랑이 그래서 중요하구나.

우리의 존재를 아름답게 추억시킬 수 있는 건 결국 친구와의 우정, 가족 간의 사랑.

이게 인생의 전부이겠구나.





그렇게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도 내가 죽고 나면 몇 천만 원, 몇 억 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고 내 집 마련이 무슨 의미일까. 그 사람은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결국 내가 살아온 삶의 태도와 마음씨가 제일 중요하다.


장례식장 한쪽에서는 수십 년의 생을 마친 사람이 깊이 잠들어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수십 년은 살아갈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떻게 이 생을 살아갈지,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가 아니라 우린 고작 주식 따위를 이야기했다. 신기루처럼 왔다가 사라질 주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삶의 쳇바퀴를 생각 없이 돌면 그저 남들 사는 대로 살게 된다. 주체적 생각 없이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것, 이게 인생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본인만의 특별한 신념 없이 남들 사는 것처럼 살려면 그렇게 주식을 이야기하고 회사 소문을 이야기하고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대화에 끼지 않고 가만히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다. 주식을 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인데.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이유는 좋은 집을 사기 위해서다. 집은 내가 앞으로 사야 할 것 중에 가장 비싸니까. 그러면 내가 30평, 40평 아파트에 살면서 대형차, 외제차를 끌면서 살면 얼마나 지속적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생각엔 딱 구입하는 그 순간까지 일 것 같다. 넓고 좋은 공간도 살다 보면 어지럽혀지고 익숙해진다. 아무리 좋은 차도 사는 순간 중고차이고 오래 타야 10년이다. 내가 죽을 때 좋은 집, 좋은 차를 두고 죽는 게 아까울까? 아니면 우리 엄마, 아빠, 오빠, 남자 친구, 친구들과 더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이 아까울까? 우리는 아마도 '시간'을 아까워할 것이다. 더 가지지 못한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를 기억해줄 수 있는 것도 내 집, 내 차가 아니다.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지 않냐고요? 소유자가 바뀌면 내 이름은 두 줄로 그여 사라진다. 진짜 나를 기억해줄 수 있는 건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혹은 친하지 않더라도 긴 인생 스쳐지나왔던 수많은 타인과 타인. 내가 유일하게 살아 숨 쉴 수 있는 건 그들의 기억 속에서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일지 정하는 건 바로 나의 지금 이 순간의 태도이다.


우리는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웃어주고 사랑을 표현해 줄 필요가 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 편안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목표가 오직 돈으로 바뀌는 순간, 자연스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나의 장례식장에는 그저 나를 따뜻하게 기억해줄 몇 명의 가족과 친구들만 와줬으면 좋겠다. 그들이 마음껏 진심을 다해 슬퍼해줬으면 좋겠다.


인생의 본질은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깨달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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