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지루한 평일. 오늘은 또 어떤 민원인에게 시달릴까 하는 두려움을 앞서 삼키고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직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무실에서 쥐 죽은 듯 고요히 지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하루라고 자위하던, 생동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서른 살 빛바랜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일 출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바로 그 녀석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다.
우리 직장 건물 바로 뒤엔 정원이 딸린 식당이 있는데 그곳에 어느 순간 길고양이가 나타났다. 아마 그 근방이 자신의 터인 모양이다. 어느 날은 인도 보도블록 위에 누워 한가로이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고, 어느 날은 주차된 차 밑 그늘에 누워 낮잠을 쿨쿨 자고 있었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도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쓰다듬는 손길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배를 드러내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지나가는 행인 1'을 맡고 있었는데, 최근에 만난 친구가 에코백 안에 고양이 사료가 가득 담긴 텀블러를 넣어다니며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모습을 본 이후로 나도 지나가는 행인 1이 아니라 '지나가는 집사 1'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마트에 들러 고양이 사료와 참치캔, 츄르 같은 것들을 샀다. 내가 먹을 간식도 아니고 그저 길냥이 한 마리 먹일 것들을 사는 그 순간이 왜 그렇게 설레고 흥분되던지. 아마 그 순간, 생애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9시부터 6시까지 존재감을 죽이고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하며 간혹 찾아오는 돌아이들의 짜증이나 화를 피하기만 하면 다행인 나날 속에서, 정말 실낱같은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던 것이다. 작은 생명을 돌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만으로도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요즘처럼 비가 오는 날은 혼자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월화수목금 거의 매일 아침마다 밥을 주고 있었는데 묘하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점점 나의 출근길 앞쪽으로 나와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 밥 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나를 마중 나온 느낌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또 모습을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그냥 지나가다 마주치는 평범한 길고양이일 뿐인데 이토록 걱정을 할 일인가 싶다가도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린 왕자가 수많은 여우 중 한 마리에 불과한 여우를 길들이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단 하나의 존재가 돼준 것처럼. 나도 그 고양이를 길들였다기보단 어쩌면 내가 그 고양이에게 길들여진 것이었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나타난 그 녀석은 밀당을 잘하는 고양이였다. 밥을 주면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남김없이 싹 먹은 후, 내 발을 한 바퀴 감싸듯 돌면서 털을 비비더니 성큼성큼 저만치 휙 걸어가 고개를 돌리고 털썩 앉아버린다. 어떨 때는 내 발에 털을 비비거나 배를 발라당 드러내며 애교를 피우지 않고 밥을 먹고 나서 그냥 바로 가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인사도 안 하고 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며 혼자 섭섭해하지만, 그다음 날도 제발 똑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길 간절히 바란다.
애교는 바라지도 않으니 밥이라도 마음껏 먹고 가렴. 너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귀여움이 뿜어져 나와 나에게 행복감을 준단다. 그냥 아프지 말고 밥만 잘 먹어다오, 고양이야.
고양이가 부러웠다. 세상 자유로운 고양이. 누군가에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웃음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고양이. 나는 과연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었는지. 나는 고양이만도 못한 미물인 것인가. 고양이와 내 24시간을 비교하며 헛된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다가 터덜터덜 퇴근을 한다.다음 날 귀여운 그 녀석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출근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