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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17. 2024

처음, 교복을 맞추다.

살아가면서 시간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아이의 중학교 교복을 맞추는 시간. 그 덕분에 시간이 흐른다는 걸 실감했다. 삶의 이벤트 같은 순간들은 시간에 무늬를 만들었다.

길거리에 교복집이 잘 보이지 않다는 걸, 모르고 살다가 아이의 교복을 맞출 때가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도대체 교복은 어디서 맞추는 거지?' 어제까지 궁금하지 않았던 사실이 문득 궁금해졌다. 중학교 안내문에 쓰인 글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마다 정해진 교복집이 있었다. 방문할 날짜를 예약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라에서 교복비를 지원해 준다니... 무려 40만 원이었다. 그 또한 놀라운 변화였다. (우리 때는 내돈내산이었는데...)


집 근처에는 교복점이 없었다. 20분 거리의 지정 교복집을 찾았다. 2개의 중학교가 그 교복가게에서 교복을 받아갔다. 교복가게에 가기 전날, 아이의 3년을 예측하기 어려워 선배엄마에게 팁을 물었다.


"교복 크게 맞춰야 돼?"

"너무 크지 않게 지금에 맞게 입는 게 예쁜 것 같아."

"그래?"

"그리고 체육복 2개 사는 게 좋아. 아이들 교복보다 체육복을 더 자주 입거든. 2개 있어야 세탁해서 돌아가며 입을 수 있으니까."


거리에서 마주친 대부분의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있었기(중학교 교복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정도)에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해준 팁대로 체육복 두 벌을 구입했다. 비용은 158000원. 교복은 나라의 지원금으로 살 수 있었지만 체육복값은 별도였다. 가서 그냥 교복만 받아오면 되는 줄 알았다가 의외의 지출에 조금 놀랐다.


교복을 벗은 지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교복의 세계에도 변했다. 놀랐던 점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치마의 길이가 짧아졌다. 과거 무릎을 덮던 치마는 이제, 무릎 위로 껑충 올라가 있었다. 20년 전에도 줄여 입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익숙하긴 했지만, 기본값은 길었는데 지금은 지급되는 교복 자체의 길이가 짧았다.

둘째, 치마허리 양쪽에 허리를 줄일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효율적이었다. (나 때에는 허리를 실로 꼬매서 크기를 조절했다.) 한쪽은 흔히 볼 수 있는 단추구멍으로 조절가능했고, 한쪽은 레일지커가 달려있었다. 레일을 따라 철제버튼을 눌러 조절할 수 있었다. 작은 기찻길 같았다.

셋째, 동절기의 재킷대신 후드티를 입었다. 3년 전부터 변화된 것으로 재킷은 안 입는다고 했다. 활동성이 더해진 네이비 후드티 뒤에는 중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학교의 과잠바같았다.


뭘 그걸로 다 놀라? 하겠지만, 20년 만에 처음 본 교복에서 강남땅의 변화같은 시간의 흔적을 목격했다. 전자제품만 업데이트 되는게 아니라, 교복도 업데이트되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길목에서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세월을 실감한다. 삶에서 격렬한 일들이 없기에, 나의 시간은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아이의 시간열차에 동승하면 움직이는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아니라면 몰랐을 장면을 발견한다.


이번 정차역은 <교복역>

다음 정차역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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