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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29. 2024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핸드폰의 기능이 진화하듯 네일아트도 진화했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샵 언니의 긴 손톱에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손톱을 펀치로 뚫은 듯, 그 사이로 바람이 통했다. 뚫린 손톱이라니? 손톱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였는데, 회화를 넘어 현대미술로 향하는 듯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오로라 네일을 보았다. 밤하늘 같은 보랏빛 컬러에 초록의 빛이 움직일 때마다 변해서 신비로웠다. 겨울에는 네일 컬러에 털실이 콕콕 박혀 있기도 했다. 작은 손톱 안에는 무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문할 때마다 퇴보하지 않고, 진화하는 네일아트 업계를 감했다.


하지만 최첨단의 디자인이 있어도 나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특별하다는 건, 비싸다는 것. 예쁜 디자인에 혹하다가도 늘 나는 기본적인 색을 입혔다. 그 사실이 슬프지는 않다. 색의 변화만으로도 다채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화려한 것들이 하고 싶다가도 실패할까 싶어, 늘 같은 방법을 고수한다.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을 고민한다.

진주를 붙이거나, 보석을 박거나, 예쁜 곰돌이를 그리지는 않지만 나만의 네일 방법이 있다. 짝짝이 양말처럼 양쪽에 다른 색을 입히는 것. 왼손은 핑크, 오른손은 보라를 한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왼손은 레드, 오른손은 오렌지를 바른다. 이렇게 양손을 다른 색으로 입히면 오른손을 쓸 때와 왼손을 쓸 때,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왼손은 귀엽다가 오른손을 쓸 때는 시크해진다.


문득 다른 사람들의 취향이 궁금했다. 진짜 오로라네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색이 다르죠?”

“그럼요. 매번 무채색만 고르는 분들도 있고,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 분은 색을 도전하지 않고 살구색만 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이번에 도전하고 싶다고 갈색을 하고 갔거든요. 손을 보는 내내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들었대요. 그래서 평소보다 빨리 색을 바꾸러 오셨어요.”

“변화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작은 손톱에 일어나는 일인데도 마음에 안 들면 계속 거슬리더라고요. 문득 궁금해지는 게, 이제껏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손님이 있었나요?”


네일숍 언니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있어요. 어떤 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그림으로 그려 왔더라고요.”

“그림이요? 손가락모양을 그리고 색을 칠해왔다고요?

“네.”

“색연필로요?”

“아니요. 아이패드에다가요.”

“이. 멋지다. 열정적이다.”


“그걸 보여주고 가능하냐고 묻길래, 같이 의논했죠. 우리 샵에는 이 컬러가 없어서 다른 컬러로 대체해야 한다. 이렇게요. 저도 늘 같은 것만 하니까, 그렇게 제안하는 걸 같이 작업하는 재밌가 있더라고요.”

“거의 예술작품이네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네일. 그런데 직접 그려오는 그림은 어떤 스타일이었어요?”

“물어보니까,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려본 거라고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주체가 되어서 네일 아트를 스케치하다니... 저도 손님이지만 보통을 그런 생각 잘 못하는데. 색만 정한다던가, 샵에 있는 그 달의 아트를 따라 한다던가가 다인데...”

“저도 그런 일은 처음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그 손님은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네일아트 활용했고, 전문가와 손을 잡고 일상의 이벤트를 만들었다. 새로운 제안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작업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데 기뻤다던 네일 숍 대표님의 태도도 창작의 즐거움을 더했다.     


우리는 대부분 늘 가던 곳에서 늘 같은 방식을 취한다. 이번 대화를 통해 늘 가는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작은 시도들이 핸드폰뿐 아니라 네일 아트의 발전을 이끌고 있었다. 창작이란 꼭 예술가, 상품개발자, 광고 디렉터, 마케터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개인이 창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네일아트샵뿐 아니라, 미용실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고, 편의점 음식으로 나만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나답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해보자. 누군가의 제안에 응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제안해 보자. 나의 즐거움이 더해지는 창작욕뿐 아니라, 세상에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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